디지털평준화되는 세상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들의 허브이자, 최근 주변 지인들이 자주 찾는 도시인 치앙마이에 보름 살기를 도전해 본다.
올드타운 동쪽 강근처의 숙소는 현대적 신축건물로 17층 높이에 루프탑 수영장까지 갖춰진 곳이다. 생각보다 세련된 건물이라 살짝 놀랐다. 1층 로비를 거쳐 12층에 아내와 함께 들어선 현관 앞에는 이곳 햇살처럼 밝고 환한 색감의 그림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다. 어디서 구했는지 작가의 서명조차 없는 소박한 그림이지만 집과 제법 잘 어울려 자꾸 눈길이 간다.
하루하루 지인들이 추천해 준 관광명소를 더듬어가며 이 도시와 사귈 것을 생각하니 설레기 시작한다. 급할 게 하나도 없다.
시작은 반캉왓 예술인마을이다. 젊은 청년들의 아기자기하고 시험적인 샵들과 화덕에 잘 구워낸 피자등은 도시의 첫인상을 매력적으로 어필하기 충분했다. 도시의 공해로 아쉬웠던 인도에서 바로 넘어왔던 터라 어딜 둘러봐도 깔끔하고 예뻐 보인다. 조금은 고생 아닌 고생을 해봐야 현재에 더 감사할 줄 알게 되는 것 같다.
올드타운 서북쪽에 위치한 치앙마이대학을 다음 코스로 정했다. 볼트운전사 덕인지 선택한 길이 캠퍼스를 가로질러 제법 넓은 학교 내를 구경하게 되었다. 59회 졸업식 안내판이 곳곳에 있고 이제 갓 졸업식을 치른 졸업생들이 가운을 입고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다. 활기찬 모습이다. 멍 때리기 좋다는 카페 앞으로 커다란 호수가 펼쳐져있다. 늦은 오후 천천히 산책하며 도심의 자연을 즐기기 그만이다.
Kalm Village는 작지만 국가에서 운영하는 문화공간이다. 업사이클한 티크나무를 멋지게 사용했는데, 건물 안에는 쉴 공간과 더불어 다양한 볼거리, 세미나가 한창이다.
동남아 대표 운송수단인 그랩과 볼트라는 앱도 알게 되어 번갈아가며 사용하니 여러모로 편하다. 디지털시대에 전 세계의 상향평준화가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쾌적한 날씨에 한낮의 강한 햇볕도 서늘한 나무그림자가 날려 보낸다.
근교 마이암뮤지엄에선 시대정신을 표현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절규에 가까운 그들의 표현은 오랜 울림으로 남는다. 그들의 아픈 역사를 예술로 승화시킨 정신과 그것을 공유할 공간을 마련해 준 치앙마이도시문화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꼭 가봐야 한다는 선데이마켓은 무슨 락공연장도 아닌데 발 디딜 틈이 없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날 것 같다. 주로 겨울을 피해 온 사람들이리라.
도시 곳곳에 갈만한 카페도 많고 사원도 많다.
오가는 여행객이나 현지인들의 밝고 여유로운 표정을 보면서도 한국을 떠올리면 왜 가슴이 아플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지역이 주는 기후적 특성 외에 도시의 개성도 이젠 소셜미디어가 이끄는 세계화에 묻혀 평준화되는 느낌이다.
우연히 숙소에서 만난 한 프랑스인은 20년간 홀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세계여행을 즐겨왔지만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가 두렵다고 한다.
그렇다. 너무도 빨리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제 역사는 디지털변화에 적응하는 인류와 적응하지 못하는 인류로 구분될 것 같다.
오지는 어느 순간 오지의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자연, 기후, 각 지역의 전통문화등은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새로운 이야기와 이미지로 재해석되고 재창조되는 속도는 무서울 정도이다.
인간은 유독 생존에 대해 불안감이 강하고 불편함을 잘 참지 못한다.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질투심도 강하다.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문화나 환경에 대한 적응력도 뛰어나다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며 자신과 동일시하는 대상에 매달린다. 그래도 불안한지 내면을 보는 것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모든 성향에서 조금만이라도 힘을 빼고 속도를 늦춘다면 어떻게 될까? 좀 더 살만할 세상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생존욕구가 불쑥불쑥 앞서는 모습을 보게 되면 고개가 떨구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긴 싫다.
경쟁이 심하지 않은 사회, 쉽지 않은 길이다.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세상을 이루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소시민으로서 남은 생에 할 일이 무엇일까?
질문에 살며시 힘을 빼고 스스로에게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