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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운 Jul 24. 2021

락바텀 (2)

페미니스트와의 만남

락바텀(Rock Bottom);
(음악) 힙합아티스 고 아이언의 첫번째 정규 앨범 타이틀곡, 락바텀; 부모님이 금지하는 건 모두 나쁘다는 평면적인 도덕관,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좇고 보는 맹목적인 추종주의를 비판한다. 병든 사회에 가하는 일갈이자, 낭만을 되찾고자 하는 공격적인 도발; (가사) “싹 다 데려와 이 밑으로"
(사전) ‘엄청’이라는 부사로 종종 활용되는 영단어 ‘rock’ + 밑바닥을 뜻하는 ‘bottom’의 합성어
(의미) 어떤 고매함도 없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저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바닥 중의 바닥, 바로 Rock Bottom


락바텀 (2) - 페미니스트와의 만남


        아무리 나의 방랑벽이 심하다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길게 유지되는 여자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인연들은 다음주가 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청산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 인연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간혹, 나에게 인간적인 유대를 느끼는 그녀들이 있었고, 그들은 측은함인지 정복욕인지 모르겠지만 텀을 두고 평소엔 아주 조용한 나의 핸드폰을 울리고는 했다. 잔다르크와의 만남이 그 중 기억에 남는다. 잔다르크는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위에, 이대를 다니는 국회의원 집 딸내미였는데, 페미니즘을 주입하려다 실패하여 결국에는 나를 손절했다.

        잔다르크는 모종삽을 닮은 뾰족한 턱과 앞트임 티가 (좀) 나는 인간이었다. 그 여자가 22살이고, 내가 21살일 때 (아마도) 우리는 미팅에서 만났다. 그날 미팅은 나와 친구들이 흔히들 '화약창고'라고 부르는 미팅이기도 했는데, 상대가 잔다르크를 빼곤 썩 그렇게 미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폭탄 돌리기 느낌으로 파트너를 정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화장실에 다녀와보니 잔다르크가 사막여우 같은 역삼각형의 얼굴로 자신이 나와 짝이 되었음을 알렸다. 술이 들어가자 친구들과는 간만에 보는 자리이기도 해서 그런지 미팅 내내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웃음이 발생할 때마다 그녀는 내 왼쪽 허벅지 안을 자꾸만 더듬고는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팅이 파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버스를 놓쳤어. 너네 집, 가봐도 돼?"


(Jean D'Arc)

        "아버지께서는 의원이셨어.” 술이 좀 들어가자, 그녀가 내 집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서 말했다. 재민이형이 사다 놓은 잭 다니엘 양주를 서너 잔 마신 상태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자랑하는 거야? 좋겠네. 참고로 우리 아빠는 아주아주 평범한 직장인이셔.” “국회의원이셨어.” 그는 같은 말을 반복하더니 자신 앞에 놓인 잭 다니엘을 원액으로 쭉 들이켰다. “재수생 시절에 술에 대해 면역력을 키워서 괜찮아” 내 염려 아닌 염려를 달래줄 정도로 그는 대화를 할 줄 아는 스타일이었다. “걱정한 건 아니었는데” “그럼 빨리 취했으면 좋겠어?” “재미를 해치지 않을 정도로는." 재밌는 여자기도 했다.

        그녀는 사연이 꽤나 많은 여자 같았다. 굳이 따져묻지 않아도,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랐다는 듯이 속얘기를 정성스레 해주었으니까. “아버지는 성공한 남자였지. 그래서 엄마가 동생을 임신하셨을 때였던가. 집을 나가서 젊은 여자랑 살림을 차렸어. 그 뒤로 보기는 쉽지 않았고. 그 다음에 아빠를 본 건, 고3때 장례식장에서가 마지막이었어. 영정사진에 예쁘게 걸려 있더라. 교통사고로 한 번에 갔대. 어이없지 않니, 참? 그 인간은 끝까지 그렇게 뻔뻔하게 가더라.” 그 뒤로는 기억이 명확히 나지 않는다. 워낙 오래 전이기도 하고, 그 여자가 눈물을 참지 못하고 내 품에 와락 뛰어들어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새 엄마’와 그의 엄마가 어떻게 싸웠는지, 유산은 어떻게 나눠 가지게 되었는지, 그 피 튀기는 정쟁의 과정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가 겪은 심적 트라우마를 가슴의 온도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가까운 동년배의 실연을 목격한 적이 나는 살면서 없다. 오히려 고의적으로 그런 무거운 주제와 늘 등을 돌린 채, 대학에 온 이후론 한없이 경박한 유흥 놀음에 스스로를 강박했었다. 그래서 잔다르크의 고백은 나의 한없이 가벼운 삶이 언젠가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나지막한 암시로 들렸다. 한없이 무거운 주제였다. 그에나 지금에나, 나는 그 무게로부터 도망치길 선택했다. 그래서 사랑을 나눈 뒤에 잔다르크가 내게 물어왔을 때, 다음과 같이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는 없어? 아팠던 일들.” “없어.” “없다고?” “어. 없어, 딱히.” “…그렇구나” 그가 꺼낸 것에 비해 한없이 초라한 나의 성의이자, 우리의 관계가 결정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녀는 똑똑한 사람이었기에 내가 비겁하게도 회피하길 선택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을 리는 없다. 해서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우린 서로 형식적인 연락을 취할 뿐, 특정한 관계 노선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만날 때는 락바텀에서였다. 언제나 바닥의 삶이었지만, 나는 언제나 바닥 중의 바닥, 바로 '락(Rock='매우'라는 뜻의 부사) 바텀(Bottom=밑바닥)'으로 그녀들을 끌고 내려가기를 희망했다. 


(한남 놀이)

        잔다르크는 그 이름의 성녀마냥 성실히 나를 락바텀까지 동행해 주었다. 그 여자는 주로 여성/약자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했다. “세월호 있잖아. 어떻게 생각해, 나르시스?” “어떤 점에 대해서?” “너무 슬프지 않아? 너랑 동갑인 친구들이야. 제대로 된 조치만 있었어도… 나는 그 생각만 하면 분노가 차올라. 그들을 죽게 한 이 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이 나라의 정치 시스템에 대해서.” 내 쪽에는 '기득권 남성 계층'으로의 진입을 앞둔 남성 무리가 있었다면, 그의 쪽에는 늘 스스로를 약자라고 느끼는 여성 (페미니스트) 이념가들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의 이야기들에 대체로 동의하지 못한 것은 그의 말대로 내가 아직 못 벗어나고 있는 ‘남성중심의 구조주의적 사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런 나를 개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나르시스, 너 자신만을 바라보지 말고, 주위를 잘 봐봐. 이 사회는 병들어 있어. 여성들에게 너무 불리한 세상이잖아. 강남역 살인사건을 봐.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힘이 약해서, 만만해서,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잖아.” 그녀는 나를 자기자신 안에 갇혔다는 의미에서 '나르시스'라고 불렀다. 시험기간이 끝나거나 방학이 시작되면, 우리는 렌터카로 부산, 강릉, 인천 – 삼면으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경계를 순회했는데, 그럴 때마다 빠지지 않는 주제는 언제나 우리 안의 ‘여성성’과 ‘남성성’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시도때도 없이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하지만, 내가 본 그들은 그 누구보다 보호를 원하는 상처입은 암컷 같은데, 너처럼.” “바보야, 그게 페미니스트라는 거야. 한남들은 누리니까 모르지, 얼마나 여자가 위축이 되는지, 모든 행동에서. 운전하러 시내에 나가면, 여자라고 빵빵대고 욕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둬, 쪼그만 한남아. 크킄” 그는 언제나 ‘한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 희열을 느꼈다. 뾰족하게 갈린 턱을 치켜들고는, 음절 하나하나에 힘주어 말했다. 나는 비-페미니스트로서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꽤나 재밌었다. 그래서 그의 전화를 받을 때면 늘 고의적으로 목소리를 잔뜩 깔고는 ‘한남 나르시스입니다’로 대답했다.

        그러면 그는 나의 장난질에 기분이 나빠하면서도, 웃겨했다. “스스로 인정하는 한남이라니, 그런 사람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저는 잠재적 가해자입니다.” 내가 과장된 중저음의 톤으로 멘트를 덧붙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폭소) 아니 대체 그런 가르침은 어디서 받으셨나요? 페미니스트라도 되신 건가요?” “큰일날 소리. 한남은 절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어. 단지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노력할 수 있을 뿐이지” (웃음) 이렇게 도발을 쭉 이어주면 잔다르크는 재미있어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당신께 페미니즘에 대한 더 많은 가르침을 하사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나의 이 말투가 지나치게 비꼬는 식으로 들릴 경우에는 꽤나 난처해졌다. 그래서 언제나 적절한 유머의 경계를 잘 타야 했다. 그 과정은 제법 즐거웠다. 그렇게 가끔씩 조우해 유희를 거치고 나면,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살았다. 잔다르크는 의외로 많은 한남들의 집을 방문했다.


(마지막 여행)

        잔다르크와의 마지막 여행은 내가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실패한 날이었다. 부득이하게도 입대를 일주일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그는 전역 선물이라며 강원도 산골 속의 멋진 펜션을 예약해놨다. 당신이 만약 페미니스트를 만난다면, 장점과 단점은 알고 가자. 성격만큼이나 씀씀이도 호탕하다는 점. 대신에 당신은 그 대가로 전통적인 '조신한 남성상'을 연기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니, 그 또한 참고하라. 나의 경우로 말하자면, 나는 그 대가로 일주일 간 잔다르크가 가져온 ‘Men Box’ 책 논평을 듣다가 입대해야 했다. 모든 페미니즘 책이 그렇듯이, 그 책 또한 남자들도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만약에 이 유복한 여대생에게 훈계를 듣는 일과 여성인권 실현 - 그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1%라도 있다면...! 그의 ‘맨 박스’ 논평을 들을 때 굳이 그렇게 잔인하게 논박하지 않았을 텐데. 

        한귀로 듣고 흘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 특유의 훈계조는 내 속의 청개구리 심보를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그녀와의 토론 중간중간에 일부러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멘트들을 날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전두환 때가 살기 제일 좋았지", "암탉이 울면 집이 망한다던데". 결국 내가 토론의 중간에 얘기를 하다말고 세상에서 제일 응큼한 표정을 한 채 그녀의 젖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하자 잔다르크는 분노로 미쳐버렸다. “다시는 연락하지마, 이 x신 한남새x야!!” 세상 온갖 험악한 말과 함께, 그는 새벽3시에 펜션을 탈출하여 강릉 동해안고속도로 위, 분노의 질주를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입대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를 봤을 때의 기억이다. 분노에 휩싸여  그 사건 이후로 잔다르크는 나를 줄곧 차단한 상태였는데, 제대를 하자 먼저 전화가 온 것이다.


(화해) - 락바텀에 남겨지다

            “나르시스, 집에 있는 거 알아. 드라이브 가자. 차 가지고 갈 테니까 나와.” 전처럼 꼬장을 한껏 피워볼까, 아니면 조신한 남성 컨셉으로 가볼까 고민하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나갔다. 단지 정문으로 나오자, 그녀가 보였다. 멋진 정장을 입은 숏컷 그녀가 멀리서 차에 기대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머리가 많이 길었네. 군대 갔다 오더니 더 길어 졌어 어떻게?” “수많은 야동, 그것도 국적을 가리지 않고.” “여전하네.” "그럼, 여전한 한남이지. 어디갈래?" "너가 원하는 곳, 어디든." 나는 우리가 자주 이용했던 소래포구 쪽의 xx모텔을 댔고, 그녀는 네비에 그 주소를 찍었다. 인천 송도, 갯벌을 따라 달렸다.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는 오랜만에 보는 잔다르크 그녀의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문뜩 섬뜩한 발견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느새 남자들은, 머리를 기르고 있고, 여자들은 머리를 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널 내 소설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뭔데?” “잔 다르크 (Jean D’arc).” “또 화나게 할래? 비꼬지마. 내가 잔 다르크면, 나르시스 넌 돈키호테야. 우스꽝스러운, 연기조차도 과장된 기사.” “그럴지도 몰라. 근데 그렇다면 니가 세르반테스겠지”. 순간 그녀와 나 사이에 진한 정적이 흘렀고, 우리의 눈동자는 정면으로 마주쳐, 긴장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또 한 번의 논쟁이 시작되나 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긴장의 끈이 해소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박장대소를 터뜨렸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잘 살아, 돈키호테 씨. 아프지 말고" "마지막 인사인건가?" "응. 너는 너밖에 없어. 너의 마음에는 내가 머물 공간이 없어. 전부 너로 가득해서,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그렇게 느꼈구나" "잘 지내, 보고싶을거야. 내가 생각이 나면 국회의사당쪽을 봐줘. 거기서 일하고 있을테니까." 그녀는 드라이브가 끝난 뒤 나를 집 앞에 내려다주었다. 나는 잔다르크의 랜드로버가 뒷길로 사라지는 모습을, 잔다르크의 마지막 모습을 꼼짝없이 바라보았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냈더니, 무척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다르크의 말이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너는 너밖에 없어,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그 뒤로 잔다르크의 말대로 우리는 만날 수는 없었다. 영 좋지 않은 타이밍에 잔다르크가 연락이 온 탓이다. 금요일로 기억한다. 소피 옆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던 나를 대신해, 소피가 잔다르크와 카톡을 이어나가던 날을. 소피는 나름 독한 구석이 있어서, 잔다르크를 대림역 근방의 x모텔로 나인 척 소환해버렸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다음날 아침 일어난 나에게 이를 알려주었는데, 나는 그녀가 잔다르크보다 몇 배는 아름다우며, 그녀와 나 사이의 관계가 훨씬 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잔다르크에게서 내가 느낀 모든 것들을 사실과 다르게 부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우연치 않게, 잔다르크라는 문제는 나의 입을 통해서 완전히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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