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우연이다
<인간실격>은 내가 읽어본 가장 비극적인 소설이다. 예술혼을 갖고 태어난 꽃미남 부잣집 도련님에겐 어떤 억압도 없다. 비극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도 레미제라블처럼 숭고하거나 희생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상정할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비극들. 예를 들어 집에서 잠시 문을 열어놓고 친구와 술을 먹는 사이 집배원에게 아내가 강간당할 확률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 끔찍한 상상이 주인공에겐 현실이 된다. 그 고통엔 어떤 대승적 의미도, 마음을 기대볼 선악의 지표도 없다. 단지 그렇게 된 것 뿐이다. 그래서 너무나 비극적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 책을 집필한 후 강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