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처음 찍는 쉼표
이직한 직장에서 2년이 되어갈 무렵, 퇴사를 결심했다. 환승이직을 고집하던 내가 일을 쉬기로 결정한 건 삶이 어지러워서였다. 끝날만 하면 새롭게 쏟아지는 도전 과제가 숨 막혔다. 연차에 비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내 전문분야가 아닌 일을 잘하는 동료들을 보며 박탈감을 느꼈다. 난생처음 DB 배정률을 계산할 땐 그날 해야 하는 일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퇴근시간까지 온갖 수식을 때려 넣다 퇴근한 날도 있었다. 아침 운동 중에 배정에 문제가 생겨 출근 시간보다 일찍 소환당하는 날에는 그렇게 마음이 끔찍할 수 없었다.
마음이 병들면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최근 6개월 동안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사소하게는 회의 중 오가는 이야기의 절반을 놓치거나 듣고 있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가서 눈치로 일을 해야만 했다. 글이 많은 메일을 받으면 읽히지 않아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매달 꼬박꼬박 해오던 행정적인 업무에서 안 하던 실수도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사실 입사 1년 차 즈음부터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 시작은 불면증 때문이었다. 예술가에게 고통은 창작의 원천이 되어준다고 하는데. 실제로 불면증은 브런치의 좋은 글감이 되어주었지만, 현실에선 끊임없는 신경 안정제를 필요로 했다. 이렇게 약에 의지하며 살 수는 없었다. 이게 24년 1월부터 쉬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시작한 이유다. 5시 40분에 일어나 아침에 운동을 나갔고, 오후 5시에 퇴근하면 7시까지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집에 와서 뻗었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내가 운동 중독이라며 그렇게 운동이 좋냐고 물었다. 사실은 그 반대다. 난 운동이 싫다. 내가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나간 건 살기 위한 발악이었다. 내가 몇몇 동료에게 이 얘길 털어놨을 때, 헬스장에서 종종 만났던 동료가 이런 말을 했다.
"어쩐지, 트레드밀 위에서 뛰던 네 표정이 이상하게 비장해 보였어."
무너져가는 나를 세워 일으키고 싶었다. 매일매일을 괜찮은 척 연기하며 살았다. 생산적이지 않은 하루를 보내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조금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처럼 내 365일을 채웠다. 사내 밴드 동호회에 들어가 주에 1회씩 합주를 하고 헬스 동호회 사람들과도 친해져 가끔 운동 끝나고 가볍게 한 잔 하기도 했다. 시즌마다 1박 2일로 동호회 사람들과 놀러 갈 때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지금 하는 일이 나와 완벽하게 맞지 않아서 행복하지 않은 거라면 일을 바꿔봐야겠다는 마음에 이직 면접도 수없이 봤다. 포트폴리오를 두 번이나 다시 만들고, 10군데가 넘는 회사에 입사 지원을 하고 3군데가 넘는 회사에 면접을 봤다. 내가 시장에서 아직 수요가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내가 일으켜 세워졌을까?
눈 떠보니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앉아 있는 것도 아닌 채로. 운동은 나를 살게 했지만, 행복하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는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운동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인연들 덕분에 웃는 날이 늘었지만 운동 자체가 날 행복하게 한 건 아니었다. 25년이 밝고 나서도 여전히 난 신경 안정제가 필요한 밤을 겪고 있다. 마지막으로 면접을 봤던 회사는 내가 오래전부터 가고 싶어서 포지션이 열리기를 기다렸던 회사였다. 나에게 딱 맞는 포지션이 열려 지원했고 순식간에 2차 면접 안내를 받았는데, 그때 이상하게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즈음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는 책을 만났다. 갭이어를 보낸 각기 다른 직장인들의 인터뷰 모음집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갭이어라는 말은 굉장히 사치스럽게 느꼈는데 이젠 남일이 아니었다. 먼저 갭이어를 보낸 직장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쉬어도 괜찮다는 안도를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트렌드 모니터링을 한다고 인스타그램을 켰는데 추천 피드에 한인민박 스탭 구인 공고가 떴다. 홀린 듯 더 보기를 누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안 하던 짓이 하고 싶어졌다. 쳇바퀴 돌듯 돌아가던 일상의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일탈이라니!
그러니까 환승이직이냐, 퇴사냐를 결정하게 만든 건 황당하게도 한인민박 스탭 공고였다. 환승이직을 했다면 아마 그럭저럭 잘 적응하며 다녔을지 몰라도 지금의 마음 상태로는 충분히 즐겁게 일에 몰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지켜야 할 것들이 더 많아졌을 때 쉼표를 찍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하던 회사의 2차 면접을 포기하는 메일을 보냈고, 프라하의 한인민박 스탭에 지원했다. 다음날 합격통보와 함께 비행기 표를 발권했다. 그렇게 나의 퇴사 일자가 정해졌다.
퇴사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뭐 하려고?'였다. 계획은 있어? 모아둔 돈은 있어? 다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그만둔다고 하는 건지 궁금해했다. "계획이 있죠. 모아둔 돈도 있고요." 내 계획은 6개월 동안 비생산적인 시간을 마음껏 보내는 것이다.
우선은 은진이를 보러 제주에 갈 거다. 그리고 담마코리아에서 진행하는 10일짜리 명상프로그램을 다녀올 계획이다. 마음속에 어지럽게 떠다니는 먼지를 가라앉히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렇게 나를 깨끗하게 헹궈내고 나면 3개월 동안 프라하에서 한인민박 스탭 생활이 시작된다. 그곳에서는 구직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 같은 건 잊고 오로지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아침에 눈 뜨면 밥 먹고 청소하고 사람들과 도란도란 떠들고, 그렇게 물 흐르듯 지나가는 봄여름을 채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