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속도를 맞추기

시간을 충분히 누리며 살기

by 시우

내 주위의 사람들이 물었다. 그래 일찍 퇴직한 이후에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이냐고.

딱히 정해둔 목표가 있어서 퇴직한 것이 아니라서, 어떤 것을 할 것이라고 말할 것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속도에 나를 맞추며 살기를 멈추고 내게 속도를 맞춰가며 살 것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뭐하며 지낼 거냐고 친구가 물었을 때 얼핏 나온 대답이

"글쎄 다른 것은 아직 모르겠지만 이제는 0.8 배속으로 살 거야."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 것처럼 늘 시간의 소화불량에 걸린 듯 서둘러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선 노동자처럼 살고 있다는 강박감이 날 지배했다. 내 앞의 삶을 찬찬히 생각해보거나 음미 감상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내 능력에 부치는 1.2배속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

모든 것을 능률과 목표 기준으로. 촘촘하고 정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선 대오에서 빠져나와, 좀 느려도 무능해도 남에게 폐 끼칠 거라는 두려움 없이 내 속도에 기준해서 지내고 싶었다.

내게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며 나와 더불어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다.


어떤 학자가 실험을 했다.

자신이 맡고 있는 학과 시간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방법'에 관한 리포트 숙제를 내주고 발표를 하게 했다. 즉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내용을 가지고 하는 발표였다.

그 수업 날 발표를 위해서는 작은 정원과 복도를 지나 세미나 실에 가게 되어 있었다. 그 길목에는 미리 짜인 각본대로 연극배우가 도움을 구하며 쓰러져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한 발표자들은 시간이 되어 각기 세미나실에 들어섰다. 물론 길목에 쓰러져 도움을 필요로 했던 사람을 모든 발표자들이 다 보았다. 그러나 그를 실제로 도운 사람은 특별히 착한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미리 20여분의 여유를 가지고 그곳을 지나던 사람이었다. 발표 시간이 촉박해서 그곳을 지나던 사람은 마음은 쓰였어도 도울 수는 없었다. 결국 선한 행동은 선의의 문제가 아니라 맘의 여유가 문제였다는 이야기.

머리로 아는 것을 손과 발로 실천하는 것 역시 시간과 맘의 여유라는 이야기.


어쩜 내게도 정말 필요한 것은 여유가 아닐까 싶다.

결국 이런 여유를 위해서는 생활의 간소함이 필요하고 자급자족의 생활이 더 효율적이다.

"많이 버는 것보다 적게 쓰는 것이 더 낫다. 많이 벌기 위해서는 노예가 되어야 하지만 적게 쓰고 지낼 수 있으면 그만큼 자유로워진다. 적게 쓰고 지내면 쉽게 자기 목적을 향해 매진할 수 있을 것이며, 대체로 더 풍요롭고 충실한 삶을 산다."

" 정말 무서운 사람은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그 어떤 것으로도 굴복시키거나 지배할 수 없다."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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