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

짜장면

by 시우

통상적인 표준어로 '중화요릿집'이 아니라 '쭝국집'이라고 불러야 그 특유의 고소한 냄새와 익숙하고도 친근한 느낌이 잘 살아난다. 내가 생각하는 중국집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단장해서 상견례하는 장소로도 쓰이는 요즘의 중화요릿집이 아니다.


어렸을 적 엄마가 시장에 가신다는 것은 집안에 음식 장만할 큰일이 생겼다는 이야기였다. 명절이나 제사 그리고 어른들 생신날이거나 귀한 손님들이 오신다는 기별을 받았을 때 정도. 당시만 해도 중앙시장이나 남부시장에 가야 제대로 장을 볼 수 있어서 버스 타고 시내를 나가야 했다. 아침 먹고 나와서 장을 보고 나면 서둘러도 점심때가 훌쩍 넘었다. 그러면 엄마는 나를 짜장면집에 데리고 가서 그 기막힌 맛의 짜장면을 사 주셨다. 주방에서는 뭐를 분주하니 볶고 지지는지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났고, 주로 푸른 선이 목에 둘러진 두툼하고 흰 사기 컵에 뜨거운 오차를 따라서 마시다 보면 짜장면이 나왔다. 역시 두꺼운 사기 면기에 담겨 나왔는데 움푹 파인 것은 곱빼기, 날렵하니 옆으로만 퍼진 것은 일반 짜장면 그릇이었다. 노란 단무지를 씹으며 둘러보면 아저씨들은 주로 곱빼기를 주문했다. 위에 얹힌 검은 소스와 통통한 면발을 나무젓가락으로 비벼서 첫 입에 넣을 때의 그 기막힌 맛이라니!


그런 날은 말조심을 각별히 해야 했다. 장에는 주로 큰 딸인 나만을 데리고 다니셨기 때문에 동생은 늘 아쉬워했고 때론 울음보를 터트리기도 했는데 만약 내가 엄마랑 짜장면을 먹었다는 것을 알면 사달이 났기 때문이다. 짜장면을 먹은 날은 일기에 쓸 것이 아주아주 많은 흐뭇한 날이었다.


중, 고등학교 졸업식날, 시내 한 복판에 있던 화교가 운영하는 '아관원'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자주색 원통형의 졸업장 케이스를 들은 각 학교의 졸업생과 학부모들로 일, 이층이 꽉 찼고 잠시 기다렸다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런 날은 탕수육 같은 요리가 한두 가지 추가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졸업식 때는 꼭 짜장면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당시 외식 문화라 해봤자, 경양식집은 거의 없을 때였으니 짜장면이 거의 유일한 외식이라서가 아니었나 싶다. 큰 음식점에 온 가족이 가서 갈비나 불고기 백반을 시켜 먹는다는 것은 당시에는 연속극에도 잘 나오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집에서도 가끔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대학교 때는 주로 과 모임이나 회식 장소는 짜장면집으로 통했다. 역 앞에는 우리 과 단골의 중국집이 따로 있었고 주로 이층의 방이 우리 모임 장소였다.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운 짜장면이나 짬뽕 곱빼기는 어디로 가고 이내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친구 중에 장학금을 받은 친구가 한턱을 내는 장소도 학교 앞 중국집이었다. 짜장면은 먹는 장소나 음식의 질로 봐서 늘 라면보다 한 등급 위였다. 물론 경양식집이 생겼지만 그곳은 맘먹은 데이트족이나 이용하는 장소라 우리에겐 먼 나라였다.


약국을 하면서 점심을 먹기가 어설펐다. 도시락을 안 싸가는 날 주로 이용하는 게 중국집이었는데 단품요리는 일 년이 지나니 죄다 섭렵이 되었다. 아주 성실한 화교가 하는 중국집으로 늘 두 번 벨이 울리기 전에 화교 특유의 발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난 그곳의 단골 고객이었고 추석, 그들의 중추절에는 그 중국집에서 월병을 선물로 보내오기도 했다. 한데 머피의 법칙처럼 늘 짜장면을 먹으려고 젓가락을 들면 환자가 왔다. 음식을 먹다가 나갔다 와보면 늘 한 그릇 가득 다시금 불어나 있곤 했다. 아무리 먹어도 굴지 않는 짜장면. 약국을 그만두고 나서 몇 년 간은 중국집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가끔 엄마를 찾아가서 함께 식사를 한다. 좋아하시는 찰밥이나 별미 죽 같은 것을 해갈 때도 있는데 엄마는 외손녀와 중국 음식 불러서 자시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짜장면이나 짬뽕에다가 요리 한 가지를 시켜서 같이 드시면서 흡족해하신다. 아마도 엄마가 가장 자신 있고 만만하게 시키실 요리가 중화요리일 것이다. 밀가루 것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하시면서도 짜장면만큼은 즐겨서 별미로 드신다. 가끔 시부모님들과 함께 중국집에 모시고 가서 연한 수프에서부터 죽순처럼 무른 음식으로 네댓 가지 코스요리를 시켜드리면 그 어떤 요릿집에 모시고 가는 것 보다도 좋아하신다. 잘 알고 익숙하면서도 입맛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시내의 중국집에 가서 어린 딸이 그토록 좋아하는 짜장면을 먹이면서 나를 바라보셨을 그 눈길을 내가 그때의 엄마보다도 훨씬 나이 많은 지금에야 생각해본다.어린 딸을 앞에 두고 젊은 우리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내 어렸을 적의 엄마는 늘 웃는 낯이었고 강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셨지만 더 없는 멋쟁이로 기억된다.

난 내 딸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될지, 우리 엄마의 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지....


더 자주 엄마랑 맛있는 음식점도 가고 이야기도 많이 나눠야지 마음 먹지만 늘 생각으로만 그치는 것이 더욱더 미안하다. 엄마 역시나 표현은 안 하시지만 "엄마, 친구분들이랑 맛있는 것도 많이 사 드시고 꼭 택시 타고 다니셔요. 절대로 저금은 하시지 말고."라며 겨우 용돈이나 드리고 종종걸음으로 되돌아오는 늘 바쁜 이 딸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맘에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해드리는 것 없으면서도 엄마만 생각하면 늘 미안하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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