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기록
옛날에는 달력이 참 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때는 종이 자체가 귀한 것이었다. 화장지라는 단어가 없던 때, 신문지도 종이로서 귀하던 때다.
12달이 한 장에 들어있고 각종 농사 정보와 더불어 그 지방 국회의원 얼굴이 정면에 인쇄된 한 장 짜리 포스터 같은 달력을 집 안방의 벽에 붙여놓고 쓰는 게 다반사였다. 아마도 배급품처럼 동사무소 차원에서 나눠줬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당시만 해도 은행의 달력은 고급이었다. 지난 달력은 모아 두었다가 교과서 표지를 싸는데 유용하게 썼다.
금은방이나 큰 회사에서 만든 일력 역시 귀하고 인기 있는 달력이었다. 매일 한 장씩 뜯어내는데 집에서 제일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두었다. 모조지에 인쇄된 A4용지 크기의 이 달력은 화장지가 없던 시절 보드라운 휴지로서 최상급이라서 가끔은 날짜보다 더 미리 뜯겨나가기도 했다.
그 후, 종이가 흔해지고 티슈나 휴지라는 개념이 자리 잡은 때도 시골에서는 달력의 공급처가 주로 은행 같은 금융기관이나 대형 상점 또는 단골 약국 정도였으리라.
새해가 다가오면 약국에서는 제약회사와 달력 특매를 했다. 특정 약품을 얼마 이상 구매할 때 달력을 몇 부 증정한다는 정책이 나왔다. 제약사로서는 겨울 제품 판매를 미리 확보하는 의미가 있고 약국에서는 어차피 사용할 제품을 한꺼번에 사입하면서 충분한 량의 증정용 달력을 준비하는 의미가 있는 연중행사였다. 그림 종류별로 몇 군데 제약사와 특매를 해서 연말이면 약국에 충분한 부수의 달력을 준비해두었다. 주로 아이들 사진 달력이나 글자가 큰 삼단 달력을 사람들은 선호했다. 단골에게는 그림 종류별로 넉넉하게 몇 개를 새해 선물로 건넸다. 이때는 달력 덕분에 새로운 단골을 만들 기회이기도 했다.
의약 분업이 되고 세월이 바뀌면서 제약회사의 약국 달력 특매는 사라졌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은 쉬이 바뀌지 않아 연말이면 달력 때문에 곤란한 경우가 많아서 더러는 자체 제작을 하기도 했다.
금년 들어 연말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바깥나들이가 거의 없었다. 달력뿐 아니라 새해에 대한 생각도 특별할 것이 없이 지냈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 흔전 만전 하던 달력이 귀한 물건이 되었다. 달력이 일부러 얻어야 하는 물건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마치 내가 현실 세상에서 소외된 느낌마저도 들었다.
모처럼 아들이 내려와서 시댁에 함께 간 날 시아버지께서 "올해는 글씨 큰 달력이 안 들어왔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미쳐 챙겨드리지 못해 송구스러웠다. 그러자 아들은 선뜻 "오늘 미쳐 가져오지 못했으니 바로 보내드리겠다."라고 하더니만 즉시 인터넷 주문을 했다. 달력을 산다는 일이 내게는 놀랍고 또 신선했다. 인터넷 몰을 보니 각양각색의 달력이 구비되어 있었다.
달력에 주의가 가서 찾아보니 이게 얼마나 공들인 물건인지가 보였다.
달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엄격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관청인 한국 천문연구원에서 천문학자들이 천체 현상을 계산하여 이 결과를 「역서」라는 이름의 책자로 매년 11월 중순에 발행한다. 그러면 달력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자료에 따라서 달력을 만든다고 한다. 천문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역서에는 태양과 달의 출몰 시간, 천체들의 위치 등 정확한 천체 운행의 정보가 총망라되어 있다. 흔한 달력 하나에 이처럼 정밀하고 방대한 과학적 데이터가 집약된 것이다. 우리가 무심하게 들고 다니는 휴대폰이 현대 IT 산업의 꽃이듯이.
조선시대, 고려 시대, 혹은 그보다 먼 옛날에도 달력이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방식은 오늘날과 유사했다. 일단 천문 관서에서 내년에 일어날 천체 현상을 총망라하여 계산한 방대하고도 정밀한 데이터를 모은다. 그런 다음 이 데이터에 기초해서 일상에서 사용할 달력을 만든다. 달별로 날짜를 매기고 각 날짜마다 규칙에 따라 생활의 지침을 배당했다. 날짜를 표시할 때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달별로 한 장의 종이에 모으고 일 년 치를 모두 묶어 책으로 만들었으므로 이를 달력, 혹은 책력이라 불렀다.
삼국시대의 기록은 너무나 소략하고 역법이 사용된 연대도 분명치 않아 정말로 역법을 사용하였는지 짐작하기조차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중국의 역법에 기초하여 국내에서 쓸 달력을 만들어왔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데 세종 때에 깊은 천문학 연구를 통해 중국의 역법에 약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보완해서 칠정산법을 새로 만들었다. 효종 때에는 오랫동안 사용해온 칠정산법을 다시 시헌력법으로 바꾸었다. 시헌력법은 서양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에 와서 전해준 서양 천문학을 채용한 역법이었다. 그 후 1896년 고종 때 우리나라는 근대적 개혁을 단행하면서 역법도 지금까지 써왔던 시헌력법을 그레고리 역법으로 바꾸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오늘은 모처럼 달력을 제자리에 맞게 찾아 걸고 형광펜으로 식구들의 생일이랑 기념일을 표시하고 내 휴대폰에도 저장했다. 일기에도 새해의 시작을 기록하고 몇 가지를 써넣었다. 이제야 새해를 맞은 느낌이 제대로 난다.
이렇게 종이 달력을 찾아 거는 거 자체가 Z세대들이 보기에는 구닥다리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시간은 손바닥 안의 휴대폰에 기억될 것이니까.
인디언의 달력에 따르면 1월은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이자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뚝뚝 부러지는 달"이다. 올해는 온난화의 영향인지 눈이 오지 않아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부러질 일 없는 겨울이 지속되고 있다. 자연이나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시간을 가지며 옷깃을 여미어야 할 때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 대한 예의이자 새로 지어진 시간의 매듭에서 다시 출발하는 의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