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 비싼 호박

새벽 시장

by 시우

퇴직 후 집 식구들 음식을 챙기면서는 장 보는 일이 주요 과제가 되었다. 전에 주말 대형 마트에 가서 목록대로 재빨리 장을 보고 그걸 낑낑대며 싣고 나를 때는 먹고사는 일이 참 번거롭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한데 요즘 들어서는 새벽 시장에 가는 맛이 있어 그 시간을 즐긴다.

이른 아침 남부시장 천변에 새벽에만 서는 도깨비 시장은 모든 게 싱싱해서 좋다. 대형마트에 비해 싸다는 느낌은 없지만 시골에서 직접 들고 나온 제철 농작물이 대부분인 데다 대형 마트에서는 구하기 힘든 것이 많아 구경하고 사는 재미가 있다. 특히 요즘에는 솎은 어린 상추며 아욱, 각종 토종 콩, 식용 어린순 등이 풍성할 때다.



전날 비가 와서 혹시나 싶었지만 산책 삼아 토요일 새벽 시장에 가봤다. 멀리서 보니 이미 장이 서 있다. 비가 와도 장은 서는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평소보다 꼬리가 훨씬 짧은 장이 서있다.

그래도 왔으니 끝에서부터 훑어본다. 마침 토종 완두콩이 있길래 한 바구니를 사고 깻잎, 메밀나물, 아욱을 사고 가다 보니 싱싱한 애호박이 있다. 하나에 천 원 이래서 두 개를 골라 담고 나서 거스름돈을 기다리는데 계속 아주머니가 딴전이다.

"여기 호박 두 개 담았어요. 거스름돈 8000원 주세요."

"무신 거스름돈?"

"네에? 아까 값을 묻고 나서 두 개 달라면서 먼저 만 원짜리 드렸잖아요."

"난 받은 적 없어. 물건 가져가면서 돈을 주지 누가 먼저 돈을 줬다고 그랴?"

"아주머니도 참나, 이거 보세요." 하면서 내 기억이 분명하지만 혹시나 내가 실수했나 싶어 장바구니 것을 죄다 꺼내며 맞춰본다.

콩이 5000원 메밀 나물이 2000원 하면서 보니 꼭 맞는 만원 어치. 아까 오만 원짜리 한 장 가지고 와서 만 원어치 채소를 사고 남은 만 원짜리 4장에서 아까 한 장을 주고 나서 딱 세장이 남아있다. 하나하나 확인해 보고 나서 아주머니에게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다.

"내가 어떻게 그 말을 믿어? 난 몰러."

분명한 사실을 모르쇠 하며 숫제 거짓말쟁이 취급이다.

"아줌마 저기 돈통에 만 원짜리는 뭐래? 아까 분명히 받으셨어. 아줌마도 착각일 수 있으니 주머니랑 가방 열어 확인해봐요."

70대의 그 할머니는 결연하게 도리질을 하며 우긴다.

"난 받은 적 없어 돈에 표시가 있남?" 하며 요지부동이다.

그 확고부동한 자기 확신이 무식해서 화도 나고 CCTV로 녹화를 한 것도 아니니 증거를 보일 수도 없어 갑갑하다.

아줌마는 숫제 눈도 나와 마주치지 않으려 계속 딴전이다. 아마도 속으로는 자기도 긴가민가 해 하는 것 같은데 한 번 밀리면 생돈을 내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버티는 거 같다.

저런 아주머니랑 더 씨름하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 아깝다.

남편은 옆에서 "내가 만 원 줄게 그냥 가자.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어떡해. 저 아줌마 상대로 싸울 수는 없잖아. "라며 난감해한다.

나 역시나 화도 나고 기도 막히지만 다른 도리가 없어 아까 골라놓은 호박 두 개를 아주머니 보란 듯이 들고 왔다.

생전 돈 받은 적이 없다던 아주머니는 호박을 두고 가라지도 않고 눈만 껌벅거리며 그대로 바라보고 있다.


기분이 상해 그냥 집으로 돌아오다 보니 맘먹은 양파랑 무, 고추를 못 사고 말았다.

전에 한 아줌마는 현금이 부족한 내게 다음에 올 때 달라며 완두콩 자루를 기어이 들려주기도 했건만....


그 아주머니는 내가 온 후에 자기 전대를 뒤져보거나 주머니를 뒤지며 곰곰 새김질해봤을까? 그이도 일부러 돈 만원을 거저먹으려고 그런 것은 아닐 것인데... 또, 다시는 시장에서 물건을 받기 전에 돈을 내나 봐라 하며 다짐을 하기도 한다. 남편이 말을 거든다.

"그 양반 치매기가 있나 봐. 일부러 모른 체하는 것은 아닐 거고. 아까 당신이 호박을 들고 올 때 아뭇소리 안 하고 있던 걸로 봐서 자기도 긴가민가 한 거 같던데? 너무 속상해하지 마."


집에 와서 보니 오늘 장 본 것은 죄다 꽝이다. 깻잎은 딴지 며칠은 된 듯 속에 시든 게 들어있고 메밀 단 속에는 누렁 잎이 많다. 아마도 어제 비가 오니 그제 팔다 남은 것을 가지고 와서 팔았나 보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토종 완두콩을 놓아 밥을 하고 손이 많이 가지만 누른 잎을 떼어내고 다듬어서 난생처음으로 메밀나물을 무쳐본다. 맛있다.


아참, 그 호박. 호박 하나는 동생과 나누고 나머지 하나로는 애호박전을 부쳐야지 맘먹는다. 아니 그냥 새우젓을 넣고 볶아볼까도 싶다.

겁나 비싸고 품이 많이 든 호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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