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맛
책을 읽다가 문득 라면이 먹고 싶어 졌다. 작가가 라면을 추억과 버무려서 어찌나 생생하고 맛깔스럽게 묘사하는지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돌았다.
대학 때 점심시간, 매점에서 커다란 들통에 끓여져서 수십 그릇이 한꺼번에 배식되는 라면을 차례가 되기를 바라며 입맛 다시던 그때를 상기해 보기도 했다.
결국 읽던 책을 덮고 부엌에 가서 냄비에 물을 올리고 왔다.
밀가루 음식을 멀리하면서부터 라면 역시 일 년에 몇 번 먹을까 말까 한 음식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음식 취급을 애당초 못 받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피할 수 없는 별식, 아이들에게 될 수 있으면 안 먹이고 싶은 음식이었으나 절대로 외면할 수 없는 인스턴트 음식의 대명사 정도.
한참 둘리 만화가 유행할 즈음 아이들은 둘리의 "라면 송"을 입에 달고 다녔다. 세상 최고의 음식이 마치 라면이라도 되는 양.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 좋은 라면
라면이 있기에 세상 살맛 나~~
라면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재미로 라면 먹을까~~ 에서
라면이 있어서 세상 살맛 나!로 끝나는 이 노래를 신이 나서 떼창을 하며 하며 녀석들은 라면이 끓여지기를 기다리곤 했다.
나 역시나 초등학교 때는 처음 선보인 삼양 라면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그 꼬불꼬불한 면발과 따끈한 국물 맛이라니!
1870년쯤 중국 북방의 납면을 중국 상인들이 일본의 개항장을 중심으로 판매하면서 시작된 이 면이 일본을 거치면서 라미엔이 되었고, 이후 1958년 식품 사업가 안도의 기발한 착상으로 지금의 인스턴트 라면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963년 삼양라면이 발매되었다. 후에 당시 정권의 분식 장려 운동에 맞물려 대중화되었는데 그때가 우리 초등학교 때였다.
우리 집 어른들은 라면에서는 아지노모도의 비적지근한 맛이 난다며 마땅찮아하셨지만 어린 나는 그 맛이 참 좋았다.
내 기억으로는 당시에 롯데 라면을 한 상자 사면 금반지 쿠폰 경품권이 들어있다며 판촉을 벌이기도 했다. 이때 롯데라면은 삼양라면에 밀렸었는데 이후 농심으로 바뀌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생각해보면 이 라면만큼 남녀노소, 빈부귀천 없이 대중화된 음식이 또 있을까 싶다. 서로 얽히고설키며 어우러져 함께 사는 삶에 딱 들어맞는 음식이 바로 라면 아닌가 싶다.
라면은 혼자 먹는 라면보다 여럿이서 커다란 냄비에 끓여 냄비 뚜껑이나 여분의 봉지 그릇에 서로서로 덜어먹는 라면이 훨씬 맛있다.
요즘 우리 아파트 밑 동네는 재개발이 거의 끝나고 입주를 앞둔 대단지 아파트가 마지막 단장으로 분주하다. 한데 딱 봐도 유독 작은 평수의 아파트 동이 큰길 쪽 모퉁이에 몰려 서 있다. 들어보니 재개발 아파트는 필수적으로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함께 지어야 한다고 해서 그 동이 들어서게 되었나 보다. 그 동 앞에도 작은 어린이 놀이터가 있고 별도의 입구도 있다. 혹시 여기서도 엄마들이 작은 평수의 아파트 아이들이 큰 평수의 아파트 놀이터에서는 놀지 못하게 한다거나 사사건건 평수로 아이들을 차별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그런 으지짢은 구분 없이 같은 친구로 어울려 아무런 차별 없이 재미있게 지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라면처럼.
점심으로 끓여먹은 라면은... 역시 그 맛이 아니다. 지금의 내 입맛이 그때의 내 입맛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때 그 맛이 아니다."라며 음식에 퇴박을 놓는 노인네처럼 내 생각도 어쩌면 나이 든 사람의 쓸데없는 짓에 불과하기를 바란다.
그럼 그렇지 아무렴, 어린아이들을 제 부모의 형편에 따라 구분하고 분리시키고 상처를 주는 일을 사람이 할 리가 없지........... 라며 내 노파심을 탓하는 말을 하게 되기를 나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