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어.
우리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랫동네가 매일 차례차례 헐려나가고 있다. 한참 낙후된 주택들이라 진즉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나왔었다. 수년 전부터 동네에서 추진하던 재개발 승인이 나자 곧바로 개발 사업 착수가 될 듯했다. 그러나 보상비 문제로 개발 조합장들끼리 송사가 붙어 한때는 살벌했다. 겨우 해결이 되고 이제야 본격적인 철거 작업에 들어간 모양이다.
동네 노인 분들 단골인 두꺼비 목욕탕이 헐리고 **당 약국이랑 그 위의 가정의학과 건물이 헐리고 이발소, 미용실, 그 옆의 삼겹살집과 수선집도 졸지에 사라졌다. 딱 "그때를 아십니까?"의 배경일 법한 동네가 헐리면서 상고머리에 번진 도장밥처럼 빈터가 군데군데 드러나는 것을 아침마다 창밖으로 본다. 별다른 인연이나 애착을 가졌던 곳이 아니었음에도 맘 한구석이 휑하고 기분이 착잡하다.
이곳에 이제 곧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전에 이런 메모를 했었다. 그 후 3년이 지난 지금 아랫동네는 사라지고 없다. 대신 1400세대의 대단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인근 오래된 도로변 건물도 재건축을 하거나 리모델링을 해서 도로 풍경이 확 바뀌었다. 요즘은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었다. 밤에 바라보는 고층 아파트 창에는 점차 불이 켜지는 세대 수가 많아지고 있다. 언제 저기에 오래된 동네가 있었던가 싶게 옛 동네에 대한 기억도 가물거리고 있다.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은 없다는 게 이치지만 시간과 공간 그중에서도 사람을 품은 것의 기억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여운을 남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의 기억과 자취는 늘 그립기도 하고 한편 애잔하기도 하다. 어쩜 그 기억이란 것조차도 시간을 지나며 나도 모르게 각색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안의 한편에 과거에 대한 향수가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비록 지금보다 불편했고 모든 게 느리고 또 가난했던 그때의 그 기억일지라도.
적어도 난 그렇다. 내가 예전의 기억에 대해 애틋한 그리움을 지닌 것이 단지 나이 들어 생긴 아날로그적 향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어쩌면 그것은 물질적으로는 많이 부족했지만 적어도 이웃 간에 살아 있던 공동체, 돈보다는 사람대접이 우선인 게 상식이었던 그때가 더 그리운 것은 아닐까 싶다.
예전 이야기를 하면 나이 든 꼰대 취급을 받거나 쓸데없는 TMI라고 눈치 먹을까 봐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 혼자서만이라도 나직나직 풀어내고 싶어 진다. 그리고 천천히 그때를 느껴보고 싶다.
"우리 때는 말이야"가 아니라 "그땐 그랬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