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그땐 그랬어

by 시우


예전에는 아이들의 신발조차도 넉넉하지 못하다 보니 추석이나 설 때 새 옷과 더불어 신발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수학여행 때나 명절 아니고는 평소에 새 신을 사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자다가도 일어나 신어보곤 하던 새 운동화.


할아버지나 어른들이 양복이나 두루마기 바지 대님 아래 신었던 구두는 말 그대로 권위의 상징이었다. 우리 집 댓돌에 검은색 구두가 놓인 날은 귀한 손님이 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 시내의 번화가에는 구두닦이들이 흔했다. 자리를 잡고 하기도 하고 어깨에 구두닦이 통을 메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일반적인 아녀자들은 흰 코빼기 고무신, 아이들은 대부분이 검은색 고무신을 신었다. 좀 사는 집 아이들은 운동화를 신었지만 그것은 아껴 신고 집에서 놀 때 함부로 신는 것은 흰 고무신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검은색 '타이야표 통고무신'을 신었다. 그것조차도 다른 헌 것과 섞이거나 잃어버릴까 봐 신발 바닥 쪽이나 뒤꿈치에 뭔가로 표식을 야물게 해 두고 아껴가며 신었다.


아이들의 고무신은 신발이 되기도 하지만 논에서는 미꾸라지 잡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잡은 물고기를 넣는 수족관, 땅에서 놀 때는 신 두 짝을 구부리고 넣고 해서 탱크나 자동차가 되기도 하는 창의력 만점의 만능 장난감이었다.

여름에는 할머니의 흰 코빼기 고무신과 우리 고무신을 지푸라기 수세미로 뽀얗게 닦아서 마루 위 한쪽 끝에 걸쳐놓곤 하는 게 내 일과 중의 하나였다.


지금도 생각나는 장면 하나. 마을 장정들이 일을 하고 고무신에 황토흙을 묻혀와서는 저물녘 마을 우물가에 들러 하루의 피곤을 씻곤 했다. 시원한 물을 두레박으로 퍼올려 먼저 목뼈가 울럭거리게 꿀꺽이며 달게 마시고 나서는 양은 대야에 가득 부었다. 검게 탄 얼굴과 목을 요란하게 씻고 신발에 끼얹으면서 발과 다리를 씻으면 흙투성이의 신발과 실한 종아리가 반질반질 구릿빛으로 드러나며 깨끗해졌다. 이때 더 이상 더러움을 남기지 않고 우물물로 죽죽 깨끗하게 씻겨 나가는 붉은 황토 흙물조차도 아름다워 보였다.

다 씻은 다음엔 그 고무신을 엄지발가락에 걸고 회전력을 이용해 뒤꿈치 부분을 탈탈 털어 물기를 털어냈다. 그런 후에 걸을 때마다 꼬록꼬록 개구리 소리가 나는, 물기도 안 가신 신발을 신고 농기구를 걸치고 당당하고도 싱싱하게 각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그게 어찌나 멋져 보였던지. 일부러 논흙을 묻혀서 그리 씻어봤지만 발이 작아서 신발이 털털 털어지지도 않았고 도무지 그런 맛이 나지가 않았다. 자라면 나도 저렇게 죽죽 물을 끼얹어가며 씻고, 기다란 신발을 뒤꿈치에 대고 멋지게 탈탈 털어봐야지 싶었던 기억 한 자락.


지금도 대청마루 끝 한편에 얌전하게 엎디어 걸쳐 있던 우리 식구들의 흰 고무신이 선연하니 기억난다. 어디 외출할 일이라도 생기면 제일 먼저 희고 뽀얗게 고무신을 닦아두었다. 우리 할머니가 버선발 외출복 차림에 토방으로 내려서며 내가 닦아놓은 흰 고무신을 보시고는 "하이고~참 얌전하게도 닦았네. 우리 새끼 다 컸구나!"라고 칭찬하시던 목소리까지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가 당시 우리 할머니의 나이만큼이나 자란 지금, 우리 집 아파트 현관에 식구 수보다 몇 배는 되게 많은 각종 신발을 지니고 있다. 큰 키의 신발장이 모자라게 꽉 차인 각양각색의 신발. 그래도 부족해서 하나를 더 장만하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는 신발 신발 신발.

부족하고 허전해서 늘 허기진 듯한 맘이 어찌 신발에 대해서 뿐이겠냐만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라진 시간, 새로운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