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그땐 그랬어

by 시우

지금은 흔하게 욕실이나 주방에 하나씩 지니고 있는 저울. 이 흔한 저울도 예전에는 귀했다. 시계가 그랬듯이.


우리 집에는 아주 작은 장대 저울이 있었다. 흰 쇠붙이로 된 몸체와 접시에 진보랏빛 실을 꼬아 만든 끈으로 된 손잡이가 있는 작은 저울인데 제 모양과 같은 예쁜 오동나무 케이스에 들어 있었다. 아주 귀하고 작은 것의 중량을 재는 것 같은데 어떤 소용이 있어서 집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짐작하기로는 할아버지께서 인삼 같은 한약재를 다실 때 쓰셨나 싶다. 나와 동생이 가끔 할아버지 방에서 꺼내와 아주 조심스레 가지고 놀았었다.


시장에서 가장 흔히 쓰던 저울은 앉은뱅이저울이었다. "돼지고기 한 근 주세요." 말하면 푸줏간 주인은 정확히 그 무게를 단칼에 잘라서 앉은뱅이저울에 척하니 올리고는 이어서, 단골 정육점은 늘 조금의 살코기를 더 얹어주었다. 그 기막힌 정확함에 늘 경탄을 금치 못했다.

당시 시장서 저울눈을 속이네 어쩌네 말이 많았던 저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후에 '전자저울'이 나오면서 이런 시비는 일시에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에 무엇보다도 중후했던 저울은 쌀집에서 쓰던 판수동 저울이었다. 짚으로 엮은 쌀섬을 불끈 들어서 쇠판 위에 올리고는 추를 얹고 가로로 선 눈금을 이리저리 옮겨서 수평을 맞추던 그 저울. 평소에는 쌀집에서 키우는 까만 고양이가 그 위에 척 하니 올라앉아서는 노란 눈으로 나를 노려봐서 겁나게 했던 저울이다.


내 기억에 유독 원망스럽게 남은 저울은 용수철저울이었다. 짧은 일자형으로 되어 들고서 아래의 고리에 물건을 달면 위의 손잡이 쪽에 무게가 계측되는 저울. 이 저울로 내가 아끼던 우리 집 돼지를 장사꾼이 네 발을 묶어 거꾸로 다는 것을 보았다. 저울 아래서 발버둥 치던 우리 돼지. 그 저울을 볼 때마다 그 장면이 기억난다.

요즘도 가끔 시골 장터에서 마른 고추를 계량할 때 쓰는 것을 보았다.


대학에 가서는 정량분석 시간에 작은 접시저울을 수시로 썼다. 핀셋과 분동이 그램 단위로 들어있던 작은 곽이 있었다. 핀셋으로 조심스레 무게가 다른 분동을 올려 양팔의 수평을 맞춰서 정량하던 저울.

내가 처음 약국을 개업할 때만 해도 이 접시저울은 유봉 유발과 더불어 조제실 필수 구비 품목이었지만 전자저울이 나온 지금 이 저울은 아마도 박물관에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욕실에 하나씩 지니고 있을 체중계. 예전에는 바늘이 오가며 계량을 하던 아날로그식이었지만 지금은 숫자가 나오는 디지털 체중계다. 그것도 인바디 체중계라 해서 체성분 분석에서부터 신체 나이까지 측정을 해준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기능이다. 욕실의 체중계도 몇 년 걸러 바뀌지만 체형이나 체력을 빼놓은 체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체중을 재는 것도 언제부터인가 시들해졌다.


최근 들어 신기하게 생각하며 쓰는 저울은 제지회사의 저울이다. 집의 폐지나 책을 모아서 싣고 시 외곽의 제지회사 재활용센터 저울 위로 운전해서 올라간다. 삐~하는 소리와 함께 중량이 표시되고 나서 폐지함에 폐지를 버리고 나오면서 다시 계량을 해서 그 차이로 폐지의 량을 재는 거다. 편리하기 그지없다.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과적차량을 단속하는 저울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이야 전자저울이 보편화되어있어 대형마트에서는 감자만 사려고 해도 그램 단위로 계산이 되니 죄다 무게를 달지만 그렇게 쓰는 저울 이외에도 어른이 되어서 늘 쓰는 저울은 따로 있다.

보이지 않게 사람을 재는 저울 말이다. 누구나 먼저 자로 재고 저울로 달아보는 일을 무의식적으로 쉴 새 없이들 하고 있다. 특징이 있다면 그 자의 눈금이나 저울의 무게 추는 제각각이라는 점. 도저히 KS마크로는 표준화할 수 없는 기준이라는 점이다. 때로는 내가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사람의 전혀 다른 계량 기준을 접했을 때 그 낯섦을 소화하고 수용하기가 힘들어 상처를 받는다. 이런 이유로 사회생활에서는 본의 아니게 사람에게 거리를 두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의 낯섦을 이해하고 소화해내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이 넓어지기도 하고 깊어지기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깝게 느끼고 서로를 허용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서로의 자나 계측하는 저울눈이 비슷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내가 매일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역시 알게 모르게 서로들 나름의 계측을 하며 지냈을 것이다. 첫인상으로 또는 기억에 의지해서. 유난히 까다로워 대하기가 조심스러운 환자, 복약 지도를 잘 따르는 환자, 정성껏 설명을 해도 나중에 엉뚱한 소리를 하는 환자, 자신의 판단만이 모든 것을 정확히 계측하는 정확한 잣대라고 확신하는 환자 등등으로 분류하면서. 상대방인 환자 역시나 나를 보는 눈이 그러했을 것이다.


요즈음은 '세상 그 많은 사람 중에 좋은 사람만 만나기도 시간이 빠듯한데 구태여 싫은 사람과 부대낄 일이 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처럼 내 마음대로 내 의지 대로만은 되지 않으니 매일을 수행하는 마음으로 지내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전혀 새로운 저울 눈을 지닌 사람을 만나 새로운 눈이 떠지기도 하고 세상의 다채로움에 즐거워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그런 자나 저울이 아무 의미 없는 친구들, 대충 서로 이심전심할 수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그냥 소소한 일상을 감사하며 별일 없이 살고 싶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요즘은 그런 사람 만나는 것조차도 제한되어있다보니 별일 없이 산다는 것의 대단함이 한층 새롭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