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죽나무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 북쪽 담 너머에는 20년 전부터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가 있다. 수령이 350년, 나무 둘레가 4m 키가 20m 인 이 참죽나무는 올해도 여전히 새순을 밀어 올려 푸른 잎을 키우고 있다. 얼마 전 치료를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정하다.
이 나무에서 난 순을 우리는 가죽 순 또는 참죽 순이라고 부르는데 새순이 나오는 초봄에만 먹을 수 있다.
전에 가죽나무 부각을 먹어본 적이 있다. 그 독특한 향과 맛에 매료되었지만 가죽순 부각은 흔하지도 않거니와 김이나 다시마 부각처럼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새로 돋은 여긴 순이다 보니 김이나 미역, 다시마처럼 저장이 가능한 식재료도 아니고 가죽나물로 불리는 이 새순도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어제 새벽장에 갔다가 좌판에 "가죽나물"이라고 골판지 쪽에 크레용으로 쓴 글씨에 내 발걸음이 멎었다. 두릅과는 좀 다르지만 얼핏 보면 오가피순 비슷한 이 새순을 보니 입안에 가죽나무 부각의 향이 감도는 듯했다. 딱 두 무더기가 남아 있었다.
이게"가죽나물"이에요?
"함, 이거 아는 사람만 아는 귀한 거여."
"어떻게 해 먹어요?"
"이거 나물로도 먹고 전 부쳐도 맛나고 또, 부각을 하면 기가 막히제."
한 번도 다뤄본 적은 없지만 일단 한 무더기를 산다.
엄마는 이제 자신의 요리법을 통 기억하질 못하시니 집에 와서 포탈을 검색해본다.
아까 그 할머니가 일러준 조리법과는 다르지만 좀 더 합리적이라 생각되는 방식을 따라 조리를 해본다.
일단 여린 순은 데쳐서 나물로, 조금 큰 순 몇 개는 전으로 그리고 좀 더 큰 몇 개의 순은 부각을 해볼 요량으로 살짝 데쳐서 베란다에 널어 말린다.
점심 상에 내놓은 가죽나물을 딸아이는 독특한 향 때문에 싫다고 한다. 가죽순 전은 특유의 향이 감소되어 두릅 전과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고소한 뒷맛이 있다. 입맛이나 기호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삼천만의 간식인 라면도 처음에 어른들은 비적지근하다며 싫어하셨다. MSG 역시 지금은 맛내기의 대명사로 알려지지만 처음에는 음식의 담백한 맛을 버린다며 뱀 뼈를 가지고 만든 것 같다는 시골 어른들 사이의 괴이한 헛소문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제는 볕이 좋아 데친 순은 잘 말랐고 오늘 아침에 찹쌀 죽을 간해서 만들고 바싹 마른 참죽 순에 발라 다시 널었다. 겨우 7개의 순이지만 조심스레 하나하나 과정에 정성을 다해 만들며 즐겼다. 남은 찹쌀 죽으로 김도 몇 장 발라서 함께 널었다.
어려서는 엄마와 할머니가 하시는 것을 곁에서 보았고 결혼해서는 우리 집에서 엄마, 시어머니랑 함께 볕 좋은 가을날을 잡아 부각을 만들곤 했다. 찹쌀을 불려 죽을 쑤고 양념을 해서 잘 식힌 후 한쪽에서 김에 발라 반쪽으로 접어 널면 그 위에 보기 좋게 통깨를 찍어 넣어 장식했다. 가을의 건조한 공기에다 쨍한 햇살 덕에 몇 시간이면 널어놓은 김은 오그라들며 바싹 말라 검게 윤기가 났다.
잘 말라 빧빧해진 이것을 살짝 튀기면 하얗게 부풀어 올라 부각이 되었다. 우리 집은 슴슴하니 간을 했기 때문에 밥반찬보다는 간식거리였다. 기름에 튀기는 음식이라 먹을 때마다 꺼내어 그때그때 튀겼기 때문에 손이 가는 음식이었다.
저녁에 보니 얇은 김부각과 달리 가죽 순은 채 마르지 않았다. 잘 마른 김부각과 가죽 순은 마른 거로 골라 한 개를 기름에 넣어 튀겨낸다. 부각은 쉽게 타기 때문에 온도조절과 타이밍이 관건이다.
보오얗게 부풀어 오른 부각은... 맛있다! 가죽순의 향이 생생하다.
소꿉장난처럼 어깨너머로 본 것을 기억해내 더듬더듬 만든 가죽 부각.
이 부각 만들기 작은 실험으로 마치 내가 내 기억 속의 어른, 살림을 주관하던 큰 살림의 안주인이라도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