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난 마스크로 무장하고 가운을 입고 남의 집 대문을 넘는다.
대부분이 오래된 동네의 낡은 집이다. 뜨거운 날씨와 더불어 주소 찾기가 제일 힘들다. 획일적인 아파트 주소에 익숙해졌던지라 **로 **번지 집을 찾는 것은 미로 찾기나 마찬가지다. 외국에서도 집을 단숨에 척하니 찾은 것은 죄다 딸아이의 방향 감각과 구글 맵 이용 덕분이었다. 난 주로 T 맵을 쓰는데 주소지까지 차로 다 갈 수가 없다. 첫날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들어선 좁은 골목길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한 기억이 있어서 근처의 큰 길가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간다. 그러나 이런 곳은 T 맵도 부정확해서 방향치에 속하는 나는 구불구불한 옛 동네의 집을 찾기는 쉽지가 않다. 난 20분 전에 도착해서 뺑뺑이를 도는데 젊은 약대생들은 나보다 훨씬 나아서 항상 미리 와서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내 시간이 많아지면서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없을까 찾았지만 쉽게 연결되지가 않았다. 몸 쓰는 일은 젬병이니 내 지식을 쓸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이번에 시와 약사회에서 하는 커뮤니티 케어 활동이 있어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노인 약료 봉사 활동이다. 참가자는 대부분이 개국 약사라서 다들 잠시 약국을 비우고 나온다. 물론 관리 약사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근무 시간을 쪼개는 일이다. 이에 비하면 난 여유가 있다. 늘 종종걸음으로 지내던 때에 비해서 정말 시간 부자가 된 느낌이다.
미리 노인 약료에 관한 교육을 받고 온라인 강의도 수강하고 필요한 물품도 받아 준비했다. 물론 약국을 할 때도 현장에서 필요성을 많이 느꼈던 일이다.
노인분들은 보통 두어 군데 병원의 약을 장기 복용하시는 분이 많다. 그러다가 다른 곳이 아프면 다시 동네 의원에 가서 처방을 받는데 그러다 보면 중복되는 약이 많다. 물론 의원과 약국에서 DUR로 일차 걸러내지만 성분이 다른 약이나 다른 질환으로 먹는 약까지 모두를 체크할 수는 없다. 본인이 현재 복용하는 약의 처방전이라도 가지고 가서 진찰을 받으면 좋으련만 고령의 노인분들은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 커뮤니티 케어란 그런 노인분들을 직접 집에 찾아가서 실제 약에 관한 상태를 살피고 도움을 드리는 일이다. 대부분이 동사무소에서 관리하는 독거노인이나 퇴원 후 다제약물 복용자들이다. 보통 복용 약이 10여 가지가 넘는다.
방문한 집 중에 두 부부가 기억에 남는다. 두 분 다 처방을 미리 받아보니 혼자서는 생활이 불가능해 보이는 환자들이었다. 고령에 기본적인 당뇨 혈압 거기다가 알츠하이머 같은 다른 질환이 겹친 상태라 약 용량으로 봐서도 병이 깊어 보였다.
한 분은 오래된 완산동 주택가. 겨우겨우 찾아가 보니 환자인 후덕하게 생긴 아내분을 깐깐하게 생긴 남편분이 돌보고 있었다. 뇌 수술 후 기억력이 거의 사라져 버린 데다 기존 질환이 있어서 살림은커녕 방금 약 먹은 것도 기억이 안 나 남편분이 약도 챙겨주고 살림도 하는 상황이었다. 아내분은 어지럼증이 있어 걷는 것도 조심하고 지내신다고. 두 분이 거처하는 곳은 오래된 깊은 골목의 구옥이었는데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리모델링을 해서 안은 쾌적했다. 마당에는 정원이라 불려도 될 만큼 꽃밭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덕분에 아내분은 햇볕이 잘 드는 실내에서 쾌적하니 지내고 계셨다. 다 아저씨의 힘이었다.
"지금은 내가 기력이 있어 관계없지만 집사람 상태가 더 나빠지고 내가 기력이 달리면 어찌 될지 그때가 걱정이지요."
"우리 집사람이 젊어서 고생을 무지하게 했지요. 우리가 못 배워 한이 맺혀서 자식들 교육은 꼭 시키자며 박봉으로 자식 셋을 다 대학까지 가르쳤어요. 그 박봉을 알뜰히 쓴 집사람 덕이지요. 애들이 즈이 엄마를 얼마나 끔찍 허니 위하는지 몰라요. 단 한 시간을 머물더라도 서울서 여그까지 차 트렁크에 국이며 밑반찬까지 싣고 와서 냉장고에 채워주고 가요."
1차 방문 때와 달리 이번 2차 방문 때는 가깝게 느끼셨는지 흉허물 없이 집안 이야기도 하시며 좀 더 있다 가라며 잡는다. 아내분은 부축을 받으며 마당까지 배웅을 하신다.
다른 한 분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80대 부부다. 다감하고 정갈해 보이는 아내분 곁에 거동이 불편한 남편분이 소파에 앉아 계신다. 미리 가 있던 동사무소 복지 담당 직원의 당부대로 두 분 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기다리고 계셨다. 매일 인슐린 주사를 놓고 하루 4차례 시간 맞춰 약을 복용하도록 돕는 일도 보통은 아닐 것이다. 약도 나름 지혜롭게 분류해서 넣어두고 계셨다. 인슐린 주사나 약에 대한 주의 사항이나 설명도 즉각 알아듣는 아주 영리하신 분이다. 아내분 성품대로 집안은 깔끔하니 정리되어 있다. 가까이 사는 딸 내외가 수시로 들른다고 한다. 자녀분들의 보살핌이 집안 곳곳에서 느껴진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밖을 못 나가니 저 양반이 엄청 갑갑해해요. 전 같으면 휠체어 밀고 근처 공원에 한 번씩 나가서 바람도 쐬고 했는데."
조그만 할머니가 키가 큰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실어 밀며 나다니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평생 저 양반이 가족 먹여 살리느라 고생했지요. 퇴직하면 놀러도 다니고 좀 편히 쉬셔야 하는데 퇴직하자마자..."
오랜 병고에 저 정도나마 유지하려면 얼마나 옆에서 애를 썼는지 짐작이 간다. 꼼짝없이 남편의 그림자로 사는 아내. 그러면서도 연신 남편이 안쓰럽다는 아내.
두 부부가 다 원망보다 서로에 대한 감사함과 깊은 연민으로 연결된 것 같았다. 아내를 보살피는 남편, 남편을 보살피는 아내. 그것도 일이 년이 아니라 숨을 거두는 그때까지 기약 없는 시간들을. 사람의 인연이란 게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섭리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싶고.
요즘에 쉽게 눈에 띄거나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 말고도 세상에는 보이지도 않고 계량되지도 않지만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는 대단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