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TV에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라는 공연을 보았다. 그것도 미리 시간을 맞춰가며 기다리다가 두 시간 반 동안 "나훈아"라는 가수의 쇼를 꼼짝 않고 앉아 본 것이다. 내가 그의 노래를 귀 기울여 듣거나 공연을 본 것은 난생처음이다. 요즘 들어 모든 방송 매체에서 무시로 나오는 트로트에 귀가 심히 피곤했는데 같은 트로트라도 그이 것은 들을만했다. 그동안 우리 시대와 얼마나 밀접했던지 귀에 익은 노래가 많았고 더러는 귀에 감겨오기까지 했다.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한 공연을 즐겁게 봤다.
나훈아가 누구인지 모르는 딸은 엄마 아빠가 꼼짝 않고 앉아서 레트로 감성이 충만한 TV 무대에 집중하는 것을 보고는 웬일이냐며 의아해한다.
나훈아는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시대의 가수는 아니다. 내가 초, 중, 고등학교 시절 남진과 함께 가요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장본인이지만 나보다 조금 윗세대와 호흡을 같이 했던 가수다. 초등학교 때 나보다 세 살이나 많았던 우리 반의 덕자는 배호와 나훈아가 몸살 나게 좋다며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는데 나와는 딴 세상의 일로만 여겨졌다. 어렸던 내 입에 올리기 거북한 "싸아랑~" 어쩌고를 읊는 것이 거슬렸다. 덕자는 위로 언니가 있는 데다 집에서 하숙을 쳤으니 대학생이나 직장인 하숙생들 영향을 받았으려니 싶었다.
고등학교 때는 호랑이 음악 선생님의 결벽성 때문에 소풍 가서도 가곡을 부르며 놀아야 했다. "'목련 꽃그늘 아래서~ '나 '오 솔레미오~' 등등" 외에는 다 잡스러운 퇴폐 가요로 취급이 되어 혹시라도 입에 올리는 것이 발각되었다가는 두고두고 닦달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학교 분위기도 입시 위주의 숨 막히는 환경이라서 대중 인기 가요에 맘이 쏠릴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만난 비지스를 비롯한 팝송에 맘이 기울었다가 대학에 가서는 본격적인 통기타 시대로 돌입했다. 당시 트윈 폴리오에서 시작해서 양희은, 이장희, 송창식 등과 비틀스, 사이먼 앤 가펑클, 아바, 카펜터스, 존 덴버, 퀸 등등의 물결 속에 빠져 지냈다. 당시의 나훈아는 소위 공돌이, 공순이들이나 듣는 노래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직장 생활 중에 노래방에서 풍부한 저음의 남자가 부르는 나훈아의 "사랑"이나 "영영"은 듣기에 나쁘지 않았고 감미롭기까지 했다. 가수 나훈아와의 인연은 딱 거기까지였다.
나훈아라는 가수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 계기는 뜻밖에도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삼성가의 비리를 파헤친 김용철 변호사가 쓴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삼성가에서는 가족이 모여 음악회를 한다. 그때는 국내 정상급의 가수를 초청해서 공연을 하는데 그 개런티가 상당하다고 했다. 가곡, 대중가요를 망라해서 초청 가수를 섭외하는데 유일하게 섭외 불가의 가수가 바로 나훈아라는 것이었다. 돈으로 불러들일 수 없는 가수라고 했다. "난 가수니까 내 노래를 듣고 싶다면 그 누구든지 간에 표 끊어서 공연 장에 와서 봐라."였단다.
그 정도의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나훈아라는 가수에게 호감이 갔다. 풍문으로 들리는 사생활의 가십거리에 끼어 들리던 이야기도 생각났다. 해외 공연을 하러 나가 호텔에 묵다 올 때는 자신을 서빙했던 직원들을 죄다 불러서는 빳빳한 고액권 팁을 건넨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소위 말하는 '인기 짱'인 스타 고객이란다.
요즘 어디서나 트로트가 대세라 노래 잘하는 사람은 창법을 바꿔서라도 다들 트로트계로 몰리는 것 같다. 한데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한결같이 거시기하다. 하드웨어는 준비가 되었건만 소프트웨어가 영 별로다. 물론 내 귀에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러던 차에 듣는 싱어송라이터 나훈아의 노래는 같은 트로트라도 나름의 격이 있었다.
은발을 뒤로 질끈 묶은 그는 젊었을 때보다 얼굴이 편안해 보여 보기에 좋았다. 내 눈에는 노년의 "앤서니 퀸"과 분위기가 많이 비슷했다. 70줄의 가수가 혼신의 힘을 다한 공들인 공연. 게다가 공연 도중 부른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은 눈이 번쩍 뜨이게 좋았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보다 훨씬. 그가 팝송을 즐겨 잘 부른다는 것도 이번에야 안 사실이다.
이제는 그를 한 명의 예인이나 마에스트로로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일생을 통해 닦아 경지에 이른 사람을 우리는 마에스트로라고 하지 않던가.
그의 노래가 내 취향과 맞고 안 맞고를 떠나 나는 그를 좋아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사람, 돈보다 가수로서의 품격을 중히 여기는 사람, 훈장 같은 명예보다 가수로서의 자유를 더 높이 여기는 예인을 만나 흔쾌하고 기뻤다. 어쩜 이것은 내가 나이 들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그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