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은비늘

야광충

by 시우

코로나 일상에 가끔씩 교외로 차를 타고 나가는 것이 다소나마 숨통을 트는 일상이 되었다.

근교의 경치 좋은 곳이나 호수가 보이는 곳의 카페는 가는 곳마다 호황이다. 다들 사회적 격리에서 오는 갑갑함이 목까지 차오른 상태일 거다.

멀리서 너른 호수를 보면서 가는데 차 안에서 딸이 야광충 이야기를 제 아빠랑 나눈다. 유튜브에 올라온 외국 바다의 야광충 광경을 보여준다.

"우와, 멋지다. 물속 반딧불이라고?"

"응, 'Sea Sparkle'이라고 불리는 1mm 남짓한 플랑크톤의 일종이래. 반딧불이처럼 루시페린이라는 물질이 있어 파도가 치는 해안가 같은 데에서 생체발광을 한대."


시인 서정주의 표현대로 초록이 지쳐 단풍이 곧 들 것 같은 창밖 풍경에만 눈길을 주던 내 귀가 쫑긋해진다.

"야광충? 그거 우리나라 남해 바다에도 있는지 한 번 찾아봐! 나 어려서 봤던 바로 그거 같은데. 아니, 아주 "돌산도 야광충"을 한번 검색해봐!"

갑자기 머리가 쭈뼛해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맘이 급해진다. 어려서부터 맘에 지니던 궁금증이 풀릴 것 같은 예감에 가슴이 벅차다.

"응, 엄마. 맞아, 우리나라에도 있다네."

그러면서 한국 해양과학기술원 김웅서 원장의 인터뷰 내용을 알려준다.


“여름방학 때 전남 여수 돌산도로 실습을 갔다. 밤에 막걸리를 마시고 바다에 오줌을 싸는데, 그 순간 바닷물이 은하수처럼 반짝였다. 물을 떠서 현미경으로 봤더니 1㎜로 안 되는 것들이 우글거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야광충이었다. 물리적 충격을 받으면 코발트빛을 내는 플랑크톤이다.”

생물교육과에 다니던 그는 그 길로 방학이 끝나자마자 해양학과를 찾아가고 대학 2학년 때 삶의 진로를 바꿔버렸다고 한다.

그래, 맞아 "야광충!" 그거였어. 여수 그것도 돌산도라니!


어려서 몇 년간을 돌산도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떠나왔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 기억 속에 비현실적일 정도로 동화 같은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우리 식구는 처음에는 부둣가의 오래된 일본식 관사에서 지내다가 위쪽 마을에 신축된 진료소 건물로 이사를 갔다. 그곳은 지대가 높은 곳, 예전 원님이 사시던 동헌의 너른 마당이었는데 우리 집은 그 마당에 지어진 진료소 겸 관사 건물이었다. 너른 대기실과 진료실, 조제실, 거기서 복도로 이어진 두 개의 방과 주방이 있었다.

방의 창문 너머로는 멀리 돌산항이 내려다보였다. 내 기억에는 처음 라디오라는 신기한 물건을 접한 시기였고 첫 친구를 사귄 시기였으며 친구에게 처음 거짓말을 해본 때였다.

처음으로 눕히면 눈을 감는 인형을 가지고 놀던 시기, 어린 동생이랑 마당 물길에 나타나던 새끼 게를 잡아 다리에 실을 묶어 놀던 때였다. 어른들을 따라 갯바위의 굴을 따서 먹고 동네 어른들이 목화를 길러 실을 물레로 잣고 베틀에 걸어 베를 짜는 것을 보며 놀던 때. 그곳의 특산물인 뻬껭이를 먹으며 여름밤이면 바닷가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때다.

여름밤에 엄마를 따라 동생 손을 잡고 바닷물 찰랑이는 부둣가를 거닐던 때. 그때 난 그 신비로운 바다의 빛을 만났다.


처음에는 물고기 비늘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나 보다 생각했다. 작은 바구니로 물을 뜨면 반짝이는 작은 물고기를 듬뿍 떠올릴 것만 같았다. 밤이 되니 물고기도 수면 아래까지 죄다 몰려오나 보다 생각했다. 한데 손을 뻗어도 잡히는 것은 없고 아무리 봐도 신비롭기 그지없어 오래오래 들여다보곤 했다. 어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그것이 여름밤이면 하늘의 별과 함께 늘 내 가슴을 설레게 하곤 했다. 하늘의 별과 물속의 신비로운 별빛 은비늘.


초등학교 입학 후 곧 그곳을 떠나왔어도 가끔씩 밤바다를 보고 있을 때는 그 반짝이던 바닷속의 은비늘이 가슴에 떠올랐다. 말이 통할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밤 해변의 반짝이는 은비늘에 대해 물었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내 깐에는 사전도 찾아보고 했지만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내 가슴의 신비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반세기가 지난 오늘 그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어려서 내 보물 상자에 있던 "별 보배 고둥"이 내 기억 속에서 이 세상으로 나왔듯이.


내 눈앞의 호수도, 가을빛이 짙어가는 들녘이나 산빛도 아름다웠지만 여름밤 바닷가에서 엄마와 동생 손을 잡고 보던 바닷속 은비늘이 내 가슴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바다의 오로라, 바다의 은하수라고도 불린다는 야광충. 그것을 알아보고 매료된 사람.

생전 만난 적도 없는 " 돌산도의 바닷물이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것"을 아는 그 해양 과학자를 만나 보고 싶었다. 내 나이와 비슷한 그를 만나 그때 그 여름 바닷가 이야기를 하며 내가 7살 즈음 느끼던 그 바닷속 은비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와는 그것이 지닌 신비로운 힘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내 마음은 이미 반세기도 전의 그때로 돌아가 머물고 있다.

젊디 젊은 우리 엄마와 엄마가 만들어준 나비 리본이 달린 원피스를 입고 동생 손을 잡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밤바다에 매료되어 있던 그때의 나로. 어디선가 미풍이 불어 내 머릿결을 시원하니 쓸어줄 것만 같다. 어디선가 여린 갯내음이 나는 것도 같고...


사진 Twitter / Antonio Esquin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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