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

늦은 밤의 독서

by 시우

"글 쓰는 재능을 가졌다는 건 그저 술술 쓸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말이네."

이 글귀는 읽자마자 곧바로 와서 내 가슴에 꽂혔다.


늘 글을 읽고 쓰지만 가끔씩 회의가 들기도 한다. 이에 들이는 내 시간과 삶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특히나 무슨 쓸모가 있을 거 같지 않고 특출 날 것도 없는 글쓰기에 시간을 온통 할애하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 때는 허망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보다 더 나은 대상을 찾지 못한 탓에 이 자리를 맴돌고 있어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나 자신을 납득시킬 뭔가가 필요했다.


마치 정답을 찾은 듯 이 말을 접하면서 난 이 글의 출처인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라는 책과 "조엘 디케르"라는 작가를 염두에 두었고, 지난 주말 책을 손에 넣었다.

제법 두꺼운 상, 하 두 권으로 이루어진 추리 소설이었다.

"조엘 디케르"는 198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교수인 아버지와 출판사에 근무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문학과 글쓰기를 접할 수 있었다. 어려서 매년 미국에서 가족 휴가를 보낸 덕에 미국을 배경으로 많은 소설을 쓰게 되었다. 그는 10대에 이미 잡지를 낸 최연소 발행인이었고 20대부터 그가 쓴 소설은 쓴 대중성과 문학성을 겸비해서 많은 상을 수상하며 각국에 번역되었고 경이적인 판매 부수를 올렸다.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대학교수와 제자로 만나 소울 메이트가 된 해리 쿼버트와 마커스 골드먼이 주인공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이자 위대한 소설가 해리 쿼버트의 집 정원에서 33년 전 실종된 소녀의 유해가 발견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글귀는 비범한 제자 마커스에게 글쓰기를 제대로 가르치는 해리의 가르침 중에 나온 것이었다.


모든 소설이 그렇지만 특히나 추리 소설은 한 번 잡으면 궁금해서 다 읽을 때까지 손을 놓기 힘들다. 이 소설도 역시 그랬다. 상권을 다 읽고 난 시각이 이미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이대로 잘까 싶다가도 궁금해서 다시 하권을 들었다.

'우와, 백수의 생활이 이럴 때 빛을 발하는 거지. 내일 푹 자면 되겠지. 나만의 방을 가진다는 게 이렇게 좋다니, 이런 호강이 얼마 만이냐.' 싶은 마음이었다. 몸, 특히 눈에 대한 걱정 불면에 대한 두려움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창밖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늦잠이라도 자보려고 잠을 청했다. 잠을 좀 자는가 싶었지만 평소의 기상 기간에 눈이 떠졌는데 온몸의 마디가 뜨겁고 욱신거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다행이다. 어린 날의 들뜸과 격정은 가라앉고 섬세함은 무뎌지고 무거움은 가벼워진다. 죄책감은 줄어가고 헛된 희망은 사라지고 안타까움은 오래가지 않는다."라는 작가 "채사장"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그러나 육신의 강건함이 사라지는 것은 이에 따르는 그림자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막상 겪을 때는 좀 버겁다.

카페인을 삼가고 낮에도 조금만 졸리면 자리에 눕고 밤에도 제시간에 잠을 청했으나 내 생체리듬에 타격을 받았는지 스르르 빠져드는 달콤한 잠은 아직 찾아오지 않고 있다. 몸도 어째 찌뿌듯하니 가볍지 않다. 결국 불안한 마음에 수면제를 먹고 잠자리에 들어 수면 시간을 벌충하며 애를 쓰고 있다.


그래도 책에서 읽은 글귀가 마음을 울린다.

" '왜 작가가 됐는데요?'

'글을 쓰는 것이 내 삶에 의미를 주었기 때문이지. 자네는 아직 모르겠지만, 원래 삶이라는 건 의미가 없네, 자네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하고, 신이 우리에 게 허락한 날들 동안에 그 목적을 이루도록 맹렬하게 싸워야 하는 거지. 자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작가가 된다는 건 살아 있는 거야. 글을 쓰는 것이 자네의 삶에 의미를 주는 날, 그때 자네는 비로소 진정한 작가가 되는 걸세.' "


객관적인 의미의 작가는 아닐지라도 나의 삶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 작업에 들이는 시간이 앞으로도 그리 아깝지는 않을 거 같다.

나이 들어가면서 이보다 더 재미있고 더 오래 지속될 대상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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