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
우리 집에 피아노를 들여놓은 것은 나 중학교 때 일이다. 당시 마을에서 TV가 있는 집은 몇 집 있었지만 피아노가 있는 집은 우리 집이 유일했다. 당시만 해도 피아노는 고가였다.
검은색으로 윤이 나고 커다란 영창 업라이트 피아노였다. 동생과 내가 쓰는 방에 들여놓은 피아노는 어찌나 좋은지 책도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읽으면 더 기분이 좋았다.
동생과 나는 바이엘을 배우러 한참을 걸어 앞 동네 피아노 선생님 집에 다녔는데 그 선생님의 방이 아주 작아서 피아노가 놓인 면적이 방의 삼분의 일은 차지하고 있었다. 그곳에 열심히 다니면서 바이엘과 체르니를 배우고 연습했다. 난 상급학교에 가면서 시간 내기가 빠듯해서 체르니 30번을 치다 말았고 동생은 오래 배웠다. 그러다 보니 피아노는 자연스레 동생 것이 되었다. 난 겨우 엘리제를 위하여나 소녀의 기도 정도를 외워서 쳤지만 동생은 피아노 소곡집의 모든 곡을 칠 수 있었고 난 그저 듣기만 해도 좋았다. 은파나 첫 발자국, 뮤직박스 댄서 같은 곡을 감미롭게 치는 동생이 자랑스러웠다.
아들리느를 위한 발라드라는 곡을 듣고는 반했지만 악보를 구할 수 없어 동생과 함께 음을 만들어서 아쉬운 대로 치곤 했다. 당시에는 이대 강당에서 약사고시를 쳤기 때문에 전국의 약대생들은 국가고시를 위해 죄다 서울로 상경을 했다. 약사고시를 보러 갔다가 이대 앞 음악사에서 크게 "아들리느를 위한 발라드 악보 입수"라고 쓴 포스터를 보고서는 너무 반가워 숨이 멎을 정도였다. 시험 치고 나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그 악보를 산 일이었다. 국가고시를 어찌 쳤는가는 기억에도 없지만 그날 집에 내려와 동생이란 노란 종이에 인쇄된 그 악보를 보고 제대로 된 곡을 쳐보며 행복해했던 기억은 남아 있다.
나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 피아노를 샀다. 전 같은 검은색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나무 빛깔의 밤색 피아노였다. 유행도 바뀌어 예전 같지 않아 나지막하고 작았다. 집도 단독주택이 아니라 아파트이다 보니 소리도 좀 작았으면 싶었다. 우리 아이들도 그 피아노로 바이엘과 체르니를 배우고 익혔다. 아이들은 객지로 나가고 그 피아노만 남은지 몇 년이 흘렀다. 시골에서 살던 집을 정리하자니 그 피아노가 걸렸다. 서울의 딸은 이미 디지털 피아노를 장만한 지가 오래되었고 직장 다니는 아들이 피아노를 쓸 일은 없어 보였다. 우리 아파트로 들이자니 가끔씩 윗집 피아노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데 나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동네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 혹시 원생 중에 피아노 필요한 아이가 있는지 물었더니 다들 요즘은 디지털 피아노를 쓴단다.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낀다.
얼마 전 집안 정리를 하면서 예전 사진은 물론 결혼사진이나 귀한 책까지도 싸그리 다 정리하는 마당에 까짓 피아노까지 끌어안고 살 일이 있겠나 싶다가도 마음 한편에선 그것을 치던 아이들이 생각나고 사실 나도 가끔은 쓸 일도 있을 건데 싶어 선뜻 마음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집과 함께 남겨두고 와야겠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다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 나이 들수록 간소하게, 가볍게가 답인 거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