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스포츠
세이셜은 아프리카 동부,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약 1,600 km 떨어져 있는데 수도는 빅토리아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인도식 화폐인 루피를 쓴다. 주변의 다른 섬나라들로 남쪽에 모리셔스, 레위니옹(프랑스령), 남서쪽에 코모로, 마요트(프랑스령), 북동쪽에 수바디브, 몰디브 등이 있다.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이 케냐 동부의 작은 섬 세이셜 군도가 나왔다. 자연이 아름답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낙천적인 작은 섬나라이자 말로만 듣던 빵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일하지 않아도 나무에 저절로 주식이 열리는 곳. 프랑스, 영국의 식민지를 거쳐 지금은 독립한 나라로 온갖 인종이 섞여있는 이 나라에서 내 눈에 띈 것은 그곳의 마라톤이었다.
이미 12번째라는 이 섬나라의 마라톤 대회는 아무런 자격이 없이 그냥 접수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뜨내기 여행객은 물론 17개월의 여자 아이도 등 번호를 달았고, 유모차에 탄 아기도 아빠가 미는 그 유모차에 번호를 달고 출전했다. 그 근처 초등학생은 죄다 모인 듯, 어중이떠중이로 5Km 구간부터 시작해서 10Km 그리고 하프, 완주 코스까지. 그러나 기록에 욕심을 내거나 완주를 목표로 달리는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냥 달리기를 내세운 그곳의 축제였다. 달리다가 힘들면 모여서 잡답을 주고받기도 하고 걷기도 하다가 목표 지점이 눈에 보이면 갑자기 올림픽 선수라도 된냥 마구 달리게 되는 그 대회는 보기만 해도 유쾌했다. 게다가 자기가 목표한 거리를 완주하면 기념 티셔츠를 주는데 그것을 받자마자 그대로 바로 옆의 백사장, 투명한 푸른 바다로 달려들면 그저 몸도 마음도 시원하고 통쾌한 그런 마라톤 대회였다.
지금 동경에서는 2020 올림픽이 열린다. 언제부터 우리에게 스포츠는 하는 게 아니라 구경하는 것이 되었나 모르겠다. 사실 올림픽이 우리 국민의 체력 향상에 무슨 기여를 하는지, 그렇게 죽자 사자 선수들을 길러서 기록을 높이는 것이 나라의 품격이 올라가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한바탕의 지구촌 축제를 나라를 옮겨가며 하는 것이 나름의 의미는 있겠지만 이미 상업화된 이 올림픽이 이대로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지금의 올림픽이,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 쿠베르탕 남작의 유지가 유지나 되는 것인지 나는 심히 의문스럽다.
이번 올림픽도 코로나 위험 때문에 반 이상의 일본 국민들이 반대를 했다. 주 경기장 앞에서 반대 시위를 하는 일본 국민들의 외침을 들었다. 지난번 브라질 올림픽 때도 국민들의 반대가 심해 성화봉송을 방해하려고 소화기를 들고 달려드는 시민, 물 바가지를 준비해서 달려드는 시민들의 모습을 TV로 보았다. 코미디 같아서 웃음이 나왔지만 뒷맛이 씁쓸했다.
조선 시대 처음 축구가 들어왔을 때 "저 힘든 일을 하인 시키고 우린 구경이나 하면 되었지 뭐 일부러 하냐."라고 했다는 양반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깔깔대고 웃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우리도 운동이 하는 게 아니라 보는 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축구도 세련된 유럽의 축구 구경보다는 동네 조기 축구단이 훨씬 우리 개인이나 사회 건강에 기여를 할 것 같고 야구도 어려서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했던 빵울치기가 더 아이들의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만들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축구나 야구 경기는 관람에도 의미를 지닐 것이다.
어려서 했던 운동이 자라나서 프로로 연결되는 온 국민 스포츠가 아니라 그저 TV 속의 재미난 구경거리로만 끝난다면 스포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사소한 것이라도 우리와 연결되어서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는 운동이 더 생생하고 값져 보인다.
우리 집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초등학교 운동장이 늘 비어있다. 지나다 보니 운동장에 듬성듬성 잡풀이 자라고 있었다. 물론 이어지는 코로나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소에도 우리 아이들은 친구들과 뛰어노는 법을 잊었다. 아침에 친구들과 뎅깡이나 팔방, 고무줄놀이, 줄넘기 등을 하려고 이른 아침을 먹고 줄달음쳐 갔던 운동장이 아니다. 비가 오면 그 질척거리던 운동장에 새끼줄에 뀐 연탄재 한 덩이를 들고 가서 깨 넣어 다져가며 우리의 몸도 맘도 키우던 운동장은 이제 없다. 그 운동장은 죄다 TV와 오락기 그리고 학원 속으로 다 사라졌다.
그나마 이번 올림픽에서 유쾌한 점은 금메달에 연연하지 않는 우리 선수와 국민들의 성숙한 모습이었다. 은메달을 따고도 큰 죄라도 지은 양 아쉬워서 펑펑 울고 노메달에 대해선 싸늘한 시선을 보내던 것이 "잘했어. 애썼어. 괜찮아"로 바뀐 게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르겠다.
국민소득이 얼마로 올라서 선진국이 되었다는 말보다는 이런 모습에서 국격이 상승되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무더운 여름날 세이셜 군도의 유쾌하고 소박한 마라톤을 TV로 접하고는 두서없이 이리저리 생각이 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