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고립
나는 대학교 때까지 컴퓨터는 그저 007, 또는 SF영화에서나 나오는 미래의 첨단 기계로만 생각하며 살았다. 컴퓨터가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힘든 지금 세대에게 말하면 “에이, 설마”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갑자기 다가온 이 환경에 매끄럽게 적응하기도 어렵고, 변화의 속도가 세계의 첨단인 이 나라에서 나날이 새롭게 전개되는 IT 세상에 은근히 겁이 난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아날로그 시대를 지나오면서 그 나름의 소중한 것에 대한 체험과 향수가 있고, 두 가지 세상을 다 접하다 보니 바뀌지 않는 것, 또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나름의 분별이 있다. 이 분별 역시 요즘 세대와는 기준이 전혀 다르겠지만.
사소한 예로 전에 가족들과 한 달 남짓 외국 여행을 할 때 단 한 번도 현지인에게 그 어떤 것도 물어볼 일이 없이 휴대폰 하나로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뭔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나는 지나는 행인을 찾았고 딸은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현대 문물을 기가 막히게 잘 이용하는 딸의 그 놀라운 능력이나 이 시대의 편리함이 내심 고마웠지만 돌이켜보니 100% 달갑지만은 않았다. 낯선 곳의 불편함에서 비롯된 현지인들과의 접촉, 뜻밖의 일, 낯섦에서 비롯되는 같은 여행자들끼리의 어울림 등등이 내가 생각하는 여행에는 늘 기본으로 포함되어 있었지만 이 편리한 기계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대하자면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이나 이성과의 사귐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이에 더한 하나의 예가 아닐까 싶다. 휴대폰이 없다면 아마도 많은 것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는 것이다.
전에 서울 지하철에서 이런 광고를 본 적이 있다. "휴대폰을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옆 사람이 당신의 연분일 수도 있습니다."는 의미의 글귀였다. 적극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점령한 테크놀로지나 앱을 만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다.
정작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는 픽사 CEO로 재직할 당시 화장실을 단 두 개만 설치해 직원의 동선을 겹치게 해서 대화를 유도한 것으로 유명하고 구글 역시 사옥을 지을 때 사람끼리의 접촉, 만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자연스러운 만남과 정보 교환이 곧 창의성과 이어지는 것이라는 발상에서 나온 생각이다. 사실 대부분의 첨단 기업의 신사옥은 직원 간 대화 늘리기’를 목표로 우연한 만남을 극대화하도록 설계한다고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그렇다. 스티브 잡스는 집에서 아이들의 테크놀로지 제품 사용 시간에 한계를 둔다고 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 역시 아이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한편, 식탁에서는 휴대전화를 아예 못 쓰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사립학교 역시 학생들이 13살이 되기 전까지는 테크놀로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이 학교의 커리큘럼은 자신감, 자기 훈련, 독립적 사고, 팀워크, 예술적 표현 같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러한 인간의 역량은 휴대전화 액정이나 컴퓨터 화면 앞에서 발전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 안의 컴퓨터도 다룰 줄 모르는데 밖의 컴퓨터를 줘봤자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에 나 역시 적극 동의한다.
잘 먹지도 않는 햄버거를 갑자기 몇 세트나 사들고 들어온 남편에게서 “햄버거 가게 키오스크를 잘못 눌러 벌어진 일이었다”는 고백을 듣는 것은 우리 세대에게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실생활에 스며든 첨단 문물에 주눅 들어 정말 줄타기하듯 어찌어찌 이 시대를 살아내고는 있지만 “이것만이 다는 아니다.”라는 생각에 마음의 주름을 펴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이 이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에 동의는 하지만 아날로그적 감성은 잊지 않기를 바란다. 시대가 빠르게 변할수록 가슴에 넉넉한 방풍 지대는 지니고 살기를.
제발 이 코로나 시대가 어서 가고 사람들 사이의 접촉과 만남이 활발한 때가 왔으면 좋겠다. 테크놀로지보다 사람 사이의 접촉이 더 소중하다는 가치를 재발견하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또래끼리의 어울림, 사람 사이의 교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재잘거림이 사라진 운동장이나 놀이터는 참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