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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Aug 16. 2021

어반 스케치

일상의 감동을 갈무리하다.

여행지를 다니다 보면 이젤을 펴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이 유명 관광지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팔기 위한 화가들이다. 이처럼 정식 등록을 하고 활동하는 화가들 외에 이젤 앞 캔버스에서 그림에 몰두해 있거나 혹은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앉아 가벼운 터치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만나면 보기에 참 좋았다. 사진을 찍는 거보다 더 그곳의 시간과 감성을 담아낼 거 같은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그 여유가 부럽기 그지없었다.


오래전 이태리 피렌체에서 만난 어느 중국인 중년 여인네는 허름해 보이는 옷차림이었는데 한쪽 모퉁이에 자리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곳이 너무 맘에 들어서 변두리 쪽에 숙소를 얻어 아예 며칠 체류 중이다"라며 자신이 그동안 한 스케치와 그림을 보여주는데 그만 난 홀딱 빠져서 한동안 그녀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작은 깔개를 깔고 앉아 낡은 빠레트와 붓 하나로 그려내는 그림은 눈이 번쩍 뜨여 그녀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세상없는 멋쟁이가 와도 감히 그녀와 견줄 수 없어 보였다.(내가 무지해서 그렇지 어쩜 그녀는 대단한 화가일 수도 있으리라.)

유럽에서는 이처럼 곳곳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을 볼 수 있었는데 나중에야 "어반 스케치"라는 용어를 접할 수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이나 여행지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감성을 담아내는 그림이었고 주로 현장 위주의 그림이었다. 꼭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좋고 자신만의 빛깔과 시각으로 현장을 담아내는 일상의 스케치를 말한다.


서울 쪽에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일반화되고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방에서는 그런 모임을 찾기가 힘들고 따로 배울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다. 서울을 오가며 배우기도 힘들어 몇 번 레슨으로 겨우 맛만 보고 여건상 포기하고 있다가 근처에 그런 모임이 있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합류했다. 코로나 때문에 주로 온라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구성원들은 미술 전공자도 비 전공자도 섞여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리기를 즐긴다는 면에서는 다 같았다. 이들의 그림에는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 나름의 개성과 이야기가 엿보여 다 좋았다. 덕분에 나도 완전 초보인 내 그림에 대한 부끄러움을 떨치고 이들과 함께 첫 발자국을 떼기 시작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남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 그리기를 즐겁고 성실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며 난 혼자서 깊이 동감하며 또 감동한다. 어학원 강사, 파스타집 셰프, 병원의 물리치료사, 미술학원 원장님 등등의 다채로운 인물들이 모여서 함께 그려나가는 세상은 물론 아름답고 따듯한 세상일 것이다.

나도 덕분에 매일 마주치는 일상이 새로운 각도로 보이기 시작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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