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초등학교 때 여자아이들에게는 당시 십 원짜리 공은 최고의 인기였다. 야구공만 한 크기에 빨강과 파란색의 목단 같은 꽃이 인쇄된 회색 고무공이었다. 요즘에야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그 당시는 동네 골목이나 공터에 아이들이 왁자지껄 모여서 놀았다. 여자애들은 고무줄을 이어서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오재미(곡물 주머니) 놀이를 했고 남자애들은 자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같은 게 일반적인 놀이였다. 물론 같이 모여서 팔방이나 뎅강, 나이 먹기, 줄넘기, 다방구 놀이 등등 맨몸으로 할 수 있는 놀이는 수 없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이 공놀이는 참 재미있는 놀이였지만 공은 돈을 주고 사야 해서 아무나 가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어쩌다가 심부름 값을 받거나 해서 이 공을 사면 참으로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판판한 마당에서 통통 공을 치면서 돌기도 하고 다리를 올려 넘기도 하는 그 놀이는 서로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늘 그 공이 문제였다. 설령 있다 해도 제품 자체가 워낙 부실하다 보니 며칠이 지나면 공이 삭고 바람이 빠져 탄성이 없어졌다. 좀 비싼 더 큰 공은 조금 나았지만 역시 그리 오래 못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잘 모셔둔 공을 꺼내어 보아 탄성을 잃고 있을 때의 그 아쉬움이라니.
그러다 내가 우연히 발견한 방법이 장독대의 단지 사이에다가 놓아두는 것이었다. 공놀이는 주로 여름에 하는 것이라 아마도 장독대 아래의 넓적넓적한 돌들과 장항아리들은 햇빛을 받아 달구어져 있었을 것이다. 그 사이에다가 공을 놓아두면 고무공 안 공기의 부피가 부풀어 올라 공이 탱탱해지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재미있게 실컷 놀고 와서는 깨끗하게 씻어 빨간 목단 꽃무늬도 선명한 공을 장독대 단지 사이에 보관하고 다음날 다시 낮에 꺼내어 놀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오래는 못 가고 어딘가가 삭아서 겉이 늙은 피부 같이 되면서 수명을 달리하거나 더러는 잃어버리거나 했었다. 하지만 이미 우리들의 여름도 거의가 다 가서 아이들은 이내 가을에 더 신나는 다른 놀이로 바빴다.
지금도 눈에 선한, 갈색의 매끈하고 따끈따끈한 장독이 죽 늘어서 있던 여름의 장독대.
맨드라미나 족두리 꽃이 둘러선 그 장독대의 크고 작은 항아리들 틈에 손을 뻗어 살며시 들어 올리면 전해지던 그 탱탱한 내 공의 감촉과 그 뿌듯함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