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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Oct 12. 2021

신발


예전에는 아이들의 신발조차도 귀하다 못하다 보니 추석이나 설 때 새 옷과 더불어 신발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수학여행 때나 명절 아니고는 그냥 평소에 새 신을 사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자다가도 일어나 신어보곤 하던 새 운동화.     

일반적인 아녀자들은 흰 코빼기 고무신, 아이들은 대부분이 검은색 고무신을 신었다. 나는 그나마 운동화를 신었지만 그것도 외출용이었고 집에서는 편하게 흰 고무신을 신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검은색 '타이야표 통고무신'을 신었다. 할아버지나 남자 어른들이 양복이나 두루마기 바지 대님 아래 신었던 구두는 말 그대로 권위의 상징이었다. 우리 집 댓돌에 검은색 구두가 놓인 날은 귀한 손님이 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      

 

저물녘이면 마을 장정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마을 우물가에 들러 하루의 피곤을 씻곤 했다. 시원한 물을 두레박으로 퍼올려 목뼈가 울럭거리게 꿀꺽이며 달게 마시고 나서는 양은 대야에 가득 부었다. 검게 탄 얼굴과 목을 요란하게 부벼서 씻고 나서 다리를 씻으면 흙투성이의 신발과 실한 종아리가 반질반질 구릿빛으로 드러나며 깨끗해졌다. 이때 우물물에 죽죽 깨끗하게 씻겨 나가는 황토 흙물 조차도 예뻐 보였다. 그다음엔 고무신을 엄지발가락에 걸고 회전력을 이용해 뒤꿈치에 탈탈 털어 물기를 털어냈다. 그리고는 채 물기가 가시지 않은 채 꼬록꼬록 개구리 소리가 나는 고무신 소리를 내며 농기구를 걸치고 당당하고도 싱싱하게 각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그게 하도 부러워 일부러 논흙을 묻혀서 꼭 같이 흉내 내어봤지만 발이 작아서 신발이 털털 털어지지도 않았고 도무지 그런 싱싱한 맛이 나지가 않았다. 나도 크면 저렇게 기다란 신발을 탈탈 뒤꿈치에 대고 멋지게 털어봐야지 싶었다.


아이들의 고무신은 신발이 되기도 하지만 논에서는 미꾸라지 잡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잡은 물고기를 넣는 수족관이, 땅에서 놀 때는 두 짝을 구부리고 넣고 해서 탱크나 자동차가 되기도 하는 창의력 만점의 만능 장난감이었다. 흰 고무신은 때를 잘 타서 여름에는 할머니의 흰 꼬빼기 고무신과 우리 고무신을 지푸라기 수세미로 뽀얗게 닦아서 마루 위 한쪽 끝에 걸쳐놓곤 하는 게 내 일과 중의 하나였다.      

대청마루 위 한편에 얌전하게 엎디어 걸쳐 있던 우리 식구들의 흰 고무신. 할머니가 외출복 차림에 내가 닦아놓은 고무신을 신으시며 "하이고~참 얌전하게도 닦았네. 우리 새끼 다 컸구나!"라고 칭찬하시던 목소리. 밖에서 놀다 돌아와 토방 위에 놓인 식구들의 신발을 보면 편안하던 마음.    

 

내가 당시 우리 할머니의 나이만큼이나 자란 지금, 우리 집 아파트 현관에는 식구 수의 몇 배 되는 각종 신발들이 있다. 큰 신발장이 모자라게 꽉 차인 각양각색의 신발. 그래도 뭔가가 부족한 듯해서 하나를 더 장만하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 같은 물건. 허전해서 늘 허기진 듯한 맘이 어찌 신발에 대해서 뿐이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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