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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May 03. 2019

엄마가 게임 좀 그만 하랬지!

삐딱하게 본 <매트릭스>, 그리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매트릭스로 철학하지 않기


<매트릭스>(1999)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매트릭스> 가지고 호들갑 떨던 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마치 세계 철학사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을 전무후무한 화두를 제시한 것처럼 칭송하던 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매트릭스>는 상당한 무게를 가진 화두를 던지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것을 철저하게 상업영화적인 틀 안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 머리 아프지 않은 선에서요.


<매트릭스>는 결코 '가상과 현실의 경계와 혼란'을 다루고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영화는 '매트릭스 바깥의 세계는 과연 현실인가?' 역시 질문해야 합니다. '당신이 믿는 건 가짜고, 이거야말로 진짜다' 식의 말장사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이건 사이비 혹은 악질적인 종교인들이 자주 써먹는 수법입니다). 진짜라고 불리는 것들이 진짜 '진짜'인지는 치열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네오(와 관객들)는 너무 쉽게 납득해 버립니다. 다시 말해, <매트릭스>는 가상 세계과 현실 세계를 분명하게 구별하며, 다른 가치를 매기고 있습니다. '가상 세계는 헛된 것이고, 현실 세계가 참된 것이며, 현실 세계는 인간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이는 이후 <매트릭스>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SF 작품들을 꿰뚫고 있는 주제의식입니다.


이게 진짜라는 보증은 있는지?


<매트릭스>는 오히려 콤퓨탄지 뭐시긴지에 대한 거부감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인터넷의 대중화'와 관련지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시작은 1969년 알파넷(ARPANET)이라고들 하지만,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1990년대 말부터입니다. 그 전까지 인터넷은 '괴짜'들의 전유물이었죠. 인터넷이 대중화되자 세계는 충격에 빠집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지구 반대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지금은 걸어가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요.


신기술이 대중화 됐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우와, 편리하다'라고 생각하며 활발히 사용하는 사람과 '이건 위험하다'라며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으로요. 인터넷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인터넷에만 빠져 현실 감각이 없다'는 성토는 세계적으로 유서가 깊습니다. 게다가 당시는 1000년 단위의 세기말이었으니까요. 그리스도교적 색채가 강한 영미권 사회가 그러한 불안감에 공명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죠.


"초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생각 해 봤어?"
"그냥 네가 컴퓨터를 너무 많이 해서 그래. 우리랑 놀러 갈래?"

<매트릭스> 중


이렇게 생각한다면 <매트릭스>의 주제의식은 '네오'의 대사(위)가 아닌 '초이'의 대사(아래) 속에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컴퓨터 끄고 차라리 친구들이랑 놀러 나가라!" 게다가 매트릭스 바깥으로 나온 '네오'가 받는 훈련은 또 어떤가요. 쿵푸, 가라데, 태권도를 비롯한 동양 격투술. 오리엔탈리즘을 잠시 떼어 놓고 생각한다면, '건전한 체육활동으로 건전한 정신 함양'이라고도 읽힐 수 있겠네요.


"I know Kung-Fu."라지만 싸울 땐 총질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 오버워치에 이르러


이제 <매트릭스>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사이에는 큰 관련이 생깁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온라인 게임은 인터넷의 대중화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니까요. 싸고 빠른 인터넷 인프라가 확충되자 온라인 게임 역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Id 소프트웨어의 ‘퀘이크(Quake)’와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Warctaft)’ 시리즈, 3DO의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Heroes of Might and Magic)’ 등의 인기작들은 현재 온라인 게임의 원형을 제시하기도 했죠.


그 중에서도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을 하나 꼽자면 역시 스타크래프트죠. 스타를 하기 위해 부모님께 인터넷 설치를 조르던 초등학생들이 어찌나 많았던지요. 허락을 받지 못한 어린이들은 PC방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현재 20~30세대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익숙해졌고, 인터넷 문화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스타크래프트와 블리자드는 현대 (한국)인터넷의 역사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매트릭스>의 디스토피아 의식('이건 위험하다')은 스타크래프트 향유층의 의식('우와, 편리하다')과 반대편에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전자의 의식은 후자의 의식에 묻히기 마련입니다. 지금 살아남은 건 누군가요? <매트릭스>와 워쇼스키즈 인가요, 블리자드와 그 유저들인가요?


스타크래프트1의 플레이 화면. 테란 플레이어로 보이네요.


그런 점에서 블리자드의 가장 최신 브랜드 오버워치는 눈여겨 볼만 합니다. 오버워치의 세계관에서 인간과 옴닉(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중 누가 진짜 인간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낡고, 무례한 질문입니다. 특히 플레이어블 캐릭터 '겐지'는 몸이 기계로 대체된 자신을 혐오하다가, 옴닉 수도사 '젠야타'의 가르침을 받아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매트릭스>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대해 묻는 척 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짜'라며 절대적인 하나의 진짜라는 전통적 의식에 매달려 있었다면, 오버워치는 '이것 역시 진짜'라며 수많은 진짜들의 상대성을 이야기합니다. 오버워치 팀이 (자사 게임을 비롯한)타 게임에 비해 사회적 소수자 문제를 활발히 이야기하는 것 역시 이와 관련이 깊습니다.


다채로운 개성으로 무장한 오버워치 캐릭터들


물론 <매트릭스>의 의식─신기술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합니다. TV 때문에, 인터넷 때문에, 스마트폰 때문에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다는 엄살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나중엔 VR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러나 엄살로는 아무 것도 예방할 수 없습니다. 진짜 걱정이 된다면, 그것과 마주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거부와 무조건적인 수용 사이를 줄타기하며 새로운 것과 마주할 때, 기술은 인간에게 풍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오는 건, 그게 오랜 정답이라는 이야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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