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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Apr 26. 2019

<어벤저스 : 엔드게임> 스포일러 안 하는 이야기

엔드게임 이야기인 척 하기


<어벤저스 : 엔드게임>이 화제다.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도 그렇고, 그 러닝타임을 감당하기 위해 독점된 스크린의 수도 그렇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큰 비중을 가지는 점에서도 그렇다. 비주얼노블의 소비층이 비교적 작았던(까놓고 말하면 거의 고사 직전이었던) 한국에서 마블 영화가 이렇게나 흥행할 줄 누가 알았을까.


MCU 하니 생각하는 썰이 있다. 친구의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다. 아직 서로 잘 몰라서 어색하던 차에, 느닷없이 그 사람이 말했다.


"영화 볼래요? 시빌 워? 그거 재밌다던데."


참, 영화의 매력 중 하나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적당히 어색한 관계의 사람끼리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 각자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편을 들며 한동안 이야기를 나눈 우리는 어느 새 제법 친밀해져 있었다. 글쎄, 극장이 유서 깊은 데이트 명소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


<라라랜드> 중


〈열차의 도착〉과 키네토스코프


그러니까, 영화는 일종의 집단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미디어라는 말이다.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파리 그랑 카페 카퓌신에서 뤼미에르 형제가〈열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à  la Ciotat)〉을 상영하던 바로 그 순간부터 영화는 계속해서 함께 보는 것이었다. 당시 최초의 영화 상영을 지켜보단 최초의 관객들은, 스크린 속 달려 오는 열차에 놀라 혼비백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럼 그 전에는 영화 비슷한 게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동영상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뤼미에르 형제가 〈열차의 시작〉을 상영하기 2년 전인 1893년 5월 9일, 브루클린 예술과학원(Brooklyn Institute of Arts and Sciences)에서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자신의 회사에서 개발한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를 선보인다. 키네토스코프를 이용한 사람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작은 상자 안에 난쟁이들의 대장간이 있다니!


물론 그것은 난쟁이들의 대장간이 아니었다. 키네토스코프는 일하는 대장장이들의 사진을 촬영해, 그 필름이 빠르게 넘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한 기계였다. 즉, 최초의 영사기였던 셈이다. 한 사람씩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키네스코프는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에디슨은 많은 돈을 벌어들였을 것이다. 키네토스코프의 실개발자였던 윌리엄 딕슨이 얼마나 받아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키네토스코프를 사용하던 모습


이러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키네토스코프에서 재생된 필름을 '영화'라고 부르기엔 조금 망설여진다. 최초의 영화 타이틀은 어디까지나 〈열차의 도착〉에게 있다. 에디슨 측에서는 조금 억울할 이야기다.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하고 사용했던 기계인 시네마토그라프는 키네토스코프와 원리상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열차의 도착〉의 프레임(초당 16프레임)은 키네토스코프 필름의 프레임(초당 46프레임)에 비해 형편없었다. 현재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리마스터본을 보아도, 후자가 훨씬 발전된 기술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열차의 도착〉은 동시 관람이 가능하다는 점 외에 많은 부분에서 키네토스코프와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별로였다는 뜻이다.



'매스'미디어


그러나 바로 그것, 동시 관람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두 필름을 구분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상상해 보자. 스크린 속 돌진하는 열차에 놀라서 문간까지 달려나간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의자에서 굴러떨어진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졸다가 옆 사람이 놀라는 바람에 이유도 모르고 함께 고함을 지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곤 다함께 안도하고, 다함께 멋쩍어했겠지. 충격과 공포, 안도와 무안에 이르기까지의 감정을 함께 공유하는 경험이야말로 진정한 영화의 시작이었다.


물론 현대에는 영화를 혼자 볼 수 있는 방법이 널리고 널렸다. DVD나 블루레이 같은 저장매체도 있고, 최근에는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미디어 플랫폼도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서치〉처럼 영화관보다 집에서 보는 게 어울리는 영화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장매체는 어디까지나 소장의 의미가 강하고, 동영상 플랫폼 역시 피드백 및 추천 시스템이 발달해 있다는 점에서 변형된 동시 관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영화는 아직까지도 함께 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뭐랄까, 영화관에서 스리슬쩍 손을 잡거나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

<500일의 썸머> 중

Q. 어벤저스 얘기는 언제 하나요?

A. '어벤저스 이야기'가 아니라 '스포 안 하는 이야기'니까 거짓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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