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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May 10. 2019

경복궁 무료입장과 탈춤과 싸이

전통을 잇는다는 것

한복을 입은 관람객의 모습

5월 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성별과 맞지 않는 한복을 입고 고궁에 입장했다는 이유로 ‘한복 착용자’ 무료 관람 혜택에서 제외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밝혔습니다. 여성은 여성 한복을, 남성은 남성 한복을 입어야 무료 관람을 인정하던 기존 '궁·능 한복 착용자 무료 관람 가이드라인'을 개선하라는 것입니다. “고궁 입장 시 생물학적 성별과 맞지 않는 한복을 착용하여 입장료를 면제받지 못하는 것은 성별표현을 이유로 불리한 대우를 받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문화재청은 이후 해당 가이드라인에 대해 “전통에 부합하는 올바른 한복 착용 방식을 알리기 위함이며,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한복을 입는 것은 외국인 등 한복 착용방식을 모르는 자에게는 혼란을 줄 수 있다”며 입장을 밝혔습니다.


외세에 의해 문화적 전통이 단절되었던 식민지 국가의 특성 상, 전통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그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따져 물어보아야 합니다.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혹은 구비되어 오는)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으로 우리가 전통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탈춤과 싸이의 상관관계


탈춤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입니다. 탈춤은 노래, 연극, 무용이 합쳐진 종합예술이며,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공연입니다. 탈춤 역시 일제강점기에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탈춤을 연습하고 공연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걸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탈춤 전승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탈춤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탈춤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남겼습니다. 탈춤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탈춤을 보지 않습니다. 최근 1년 동안 영화나 뮤지컬을 관람한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최근 1년 동안 탈춤을 관람한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전통에 관심 없는 젊은 세대를 탓합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현대 공연예술에 비해 탈춤이 열등함을 탓합니다. 하지만 모두 적절하지 않은 해석입니다. 탈춤의 쇠락에는 수많은 맥락이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탈춤 유통 과정의 문제'를 주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봉산탈춤의 목중탈

탈춤은 '열린 구조'를 가진 공연입니다. '제4의 벽'이 없는 공연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배우와 관객객의 경계가 흐릿합니다. 무대와 관객석이 나뉘어 있는 서양 연극과 달리, 탈춤은 특별한 무대가 없습니다. 탈꾼이 탈춤을 추거기가 무대고, 관객들이 둘러앉기 시작하면 거기가 관객석이 됩니다.


공연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탈꾼들은 자유롭게 관객 사이를 드나듭니다. 탈꾼들이 탈을 쓰고 관객들 사이사이에 앉아 탈춤을 구경하다가, 자신의 차례가 오면 가운데로 나가 춤을 춥니다. 그러다 자기 배역이 끝나면 탈을 쓴 채로 다시 관객 사이에 들어가 놀이를 구경합니다. 배우였다가 관객이었다가, 다시 배우로 변모합니다.


악사와 관객들도 적극적입니다. 조용히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추임새를 넣고 호응합니다. 누군가 "잘한다!"라며 소리치면 배우는 그 관객을 바라보고 "잘하지 그럼!"이라 응수하고, 흥에 겨운 관객들이 배우 사이로 끼어들어가 함께 춤을 추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Graffitied by LEODAV(https://www.instagram.com/leodav/)

다시 말해 탈춤은 '스트리트 문화'인 것입니다. 뮤지컬이 아니라 오히려 힙합에 가깝습니다. 어느 정도 상업예술화 된 봉산탈춤의 경우, 지방 관아의 주최 아래 각 마을의 탈꾼들이 모여 경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탈꾼 크루 사이의 댄스 배틀이랄까요.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탈춤을, 극예술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고리타분하게 따져 가며 '옛날 탈춤을 재현하려고만' 하니 재미가 없어지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게 유통하니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는 건 당연합니다. 탈춤의 구체적인 복장과 춤사위와 대사들은 문서화되어 살아남을지는 몰라도, 탈춤이 가지고 있는 신명나는 흥의 정신은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축제 사기캐 싸이

그러나 탈춤의 정신은 고스란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에 의해서 말입니다. 콘서트에 가서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고, 목놓아 떼창을 하다가, 기진맥진해서 막차타고 집에 돌아오는 것이야말로 탈춤의 정신입니다. 이것은 학문적인 연구나 정부 주도의 진흥 사업 따위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대학축제며 군부대 위문공연의 슈퍼스타 싸이는 그런 의미에서 21세기형 탈꾼입니다. 너무나도 간단한 춤, 당장이라도 들고 뛰어야 할 것 같은 음악, 따라부르기 쉬운 노래. 싸이의 손짓발짓에 따라 이리저리 몸을 흔들 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탈춤을 추며 놀던 '전통'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맡길까


물론 전통을 사실적으로 조사하고 기록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전통을 보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일하기 짝이 없습니다. 현대에 알맞게 옛 것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사실의 기록과 현대적 재해석. 이 둘의 영역은 겹치면서도 서로 다른 것입니다. 사실의 기록이 학술적 전문가들의 일이라면, 현대적 재해석은 예술적 전문가들과 그것을 소비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입니다.


문화재청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옛 한복은 어떠했나'를 고민하고 밝혀내는 것이 과연 누구의 일인지. 그것을 고궁을 드나드는 관람객들에게 떠맡겨야 하는지. 알맞은 일을 알맞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할 때, 전통은 현재완료를 넘어 현재진행의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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