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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Aug 02. 2019

검은 조직은 어쩌다 바보 집단이 되었는가

- 명탐정 코난을 위한 희생양 검은 조직 -

 어느 곳에서건 미묘한 균형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소 한 가운데에 균형을 잡고 버텨 서 있어본 적이 있나요? 생각보다 많이 어렵습니다. 시소도 온 힘을 주고 버텨 서있어야 하는데 가상세계, 즉 만화나 게임 같은 곳에서는 얼마나 어려울까요? 출시한지 벌써 20년이 넘은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도 균형을 잘 잡지 못해서 욕을 먹고는 합니다. 그래도 스타크래프트 같이 나온지 오래된 것들은 나름의 노하우와 계속된 피드백으로 다른 것보다는 균형이 잘 맞는 편에 속하지요. 하지만 여기 시작으로부터 20년이 지나도록 한결같이 균형이 맞지 않는 불균형의 수호자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명탐정 코난입니다.     



 명탐정 코난은 1994년부터 일본의 만화잡지 ‘소년 선데이 코믹스’ 에서 연재되었습니다. 현재 96권까지 단행본이 나온 장수 시리즈이지요. 워낙 유명한 시리즈인지라 줄거리는 대충 알려져 있습니다만 대충 소개를 한 번 해볼까요.

   

  

고등학생 탐정 쿠도 신이치(한국명 : 남도일)은 아주 잘 나가는 명탐정이었습니다. 어느 날 소꿉친구 모리 란(한국명 : 미란이)과 놀이공원에 놀러갔다가 한 괴한에게 공격을 당합니다. 정신을 잃은 신이치에게 정체모를 알약을 먹이는 괴한. 한참 정신을 잃고 있던 신이치는 순찰 중인 경비원에게 발견되었습니다. 경비원이 꼬마라고 부르자 의아했던 신이치는 이내 자신의 몸이 초등학생으로 어려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합니다. 다급히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아가사 박사(한국명 : 브라운 박사)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신이치를 걱정해 찾아온 란이 작아진 신이치를 보게됩니다. 당황한 신이치는 자신을 친척네 아이 코난이라고 소개하게 되지요. 아가사 박사는 자신은 늙어서 힘이 없다며 코난을 란에게 맡깁니다. 코난은 그렇게 란에게 얹혀사는 객식구가 되어 모리 코고로(한국명 : 유명한) 탐정 사무소에서 여러 사건을 해결해나가며 자신을 습격한 자의 정체를 밝혀나갑니다.


     

이런 줄거리로 명탐정 코난 시리즈가 시작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작가가 정통 추리물이 아닌 로맨스 살인 코미디라고 말했을 정도로 정통적인 탐정물 작품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특히 살인 사건이나 여러 엽기적 사건들이 난무하는 와중에 연애하고 농담을 막 쏟아내는 캐릭터들을 보고 있자면 아연하기까지 하지요. 그래도 이렇게 가벼운 분위기를 추구하여서 그런지 다른 탐정 만화에 비해 상당히 인기가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이런 장수 시리즈가 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이런 인기는 없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코난 시리즈는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점차 연재가 질질 늘어지고 있습니다. 이 만화가 연재되는 잡지가 상대적으로 다른 잡지에 비해서 유명하지 않은 잡지인지라 명탐정 코난이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었기 때문이죠. 결국 돈 문제라는 겁니다. 이런 자본주의적 사정으로 연재를 장기화해야했던 겁니다.     



그러다보니 전개의 속도가 아주 느릿느릿 달팽이 기어가듯 합니다. 그러다보니 작중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등장인물이 사용하는 물건들의 발전 속도는 어마어마하지요. 분명 지금까지 있었던 코난 시리즈는 작중의 시간이 1년 정도 경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작중에서 옛날 다이얼 전화기를 사용하던 인물이 1년도 안된 새에 최신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또 이런 시간 경과는 코난이 하루 평균 15건의 사건을 해결해야만 설명이 가능합니다. 하루에 코난이 목격하는 살인의 수는 최소 3건 이상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도 이 부분은 작품의 특징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봅시다.     



장기 연재의 가장 큰 적은 코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설정. 바로 ‘검은 조직’이었습니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하나의 목적. 검은 조직의 정체를 밝히고 조직의 음모를 분쇄한다는 이야기가 끝나면 더 이상 작품이 이어질 수 없는 것이죠. 검은 조직은 절대로 잡히거나 정체가 파악되어서는 안 됩니다. 완전히 작품에서 배제되어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독자는 아마 검은 조직의 존재 자체를 까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검은 조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검은 조직은 작품 내에서 계속 소극적이게 모습을 비춰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독자와 주인공이 검은 조직을 잊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진이나 다른 검은 조직원들이 슬쩍슬쩍 만화에 얼굴을 비추는 겁니다. 하지만 아주 긴 출연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독자들이 검은 조직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게되면 검은 조직의 정체를 밝힌다는 코난의 목적은 그저 트루먼쇼, 모노드라마에 불과해지기 때문이죠. 다 아는 조직을 혼자만 모르는 주인공이 아주 긴 이야기 속에서 허우적대는 모습. 긴장감이 생길까요?     



검은 조직은 절대로 유능해서는 안 됩니다. 검은 조직이 지나치게 유능하다면 위에서 언급한  소극적인 모습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작중에서 검은 조직은 세계의 뒷편을 조종하는 초국가적인 범죄 조직으로 나옵니다. 테러, 살인 기타 등등 안 끼는 곳이 없지요. 이렇게 거대한 힘을 가진 검은 조직이 유능하기까지 하다면 소극적인 자세로 코난을 보고만 있을까요? 마왕성에서 용사가 올 때까지 부하만 내보내는 마왕이 죽는 이유는 그 부하를 잡아서 용사가 강해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다 압니다. 정말 유능한 검은 조직이라면 전력을 다 해서 정면으로 코난을 짓뭉개버렸겠지요. 그리고 코난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아주 빠른 전개가 되었을 겁니다.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말 유능한 적을 쓰러뜨리게 하는 방법이구요. 다른 하나는 주인공의 주변인을 모두 무능하게 만들어 혼자만 유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장기 연재를 위해 검은 조직을 바보 집단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코난이 돋보이기 위해서는 주변인이 모두 바보가 되어야했습니다. 바보들 속에서 명탐정이라고 불리는 코난의 기분은 어떨까요? 지금까지 검은 조직이 바보 집단이 되어야했던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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