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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Aug 16. 2019

당신의 플레이리스트를 책임질 시티팝 앨범

그 네 번째, 〈For You〉(1982)

P : 정말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L : 타케우치 마리야의〈VARIETY〉에 대해 이야기했던 게 마지막이었죠. 그게 6월 말이었는데, 거의 두달이 다 됐어요.

P : 주변에서 코너 폐지됐냐고 물어보는 분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L : 정말요? 우리가 그렇게 인기가 많았나?

P : 아뇨, 사실은 한두 명 정도였어요…….

L :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럼 오늘 이야기할 앨범은 무슨 앨범인가요?

P : 야마시타 타츠로(山下達郞)의 〈For You〉(1982)입니다.


山下達郞 - 'Sparkle' in〈For You〉(1982)


L : 누누이 얘기하지만, 저는 앨범의 첫 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확히는 첫 곡의 첫 16마디가요. 사람한테 첫 인상이 중요하듯이 말이에요. 음악이 '시간을 점유하는 예술'이라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앨범의 첫 곡이란 특별한 시간, 새로운 시간으로 걸어들어가는 첫 걸음이니까요.

P : 그럼 'Sparkle'은 어떤가요? 앨범의 첫 곡으로서.

L : 최고죠. 과장 좀 보태서 가장 위대한 퍼스트 트랙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더 스미스(The Smiths)의 조니 마를 연상시키는, 찰랑찰랑거리는 기타 사운드가 먼저 치고 나가요. 가볍고 청량하고 자유롭죠. 그러다가 베이스와 드럼과 브라스가 가세하면서 두터움이 생기고요. 이 때 트럼펫과 트롬본처럼 높은 음역대의 금관악기를 적극 기용하면서, 두터움을 챙기면서도 청량감은 남겨둬요. 마치 드라이브하면서 조금씩 속력을 올리듯이.

P : 저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뭐랄까, 빅밴드 스윙 재즈 같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철저하게 록 리듬 기반이지만요. 아마 말씀하신 것처럼 브라스의 비중이 크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편성도 비슷하잖아요? 피아노, 베이스, 드럼, 기타의 리듬 섹션이 있고, 트럼펫, 트롬본의 브라스 섹션이 있고, 테너&바리톤색소폰의 리드 섹션이 있고. 클라리넷…은 없지만. 대신 신디사이저가 있군요.

L : 맞아요. 이 곡 뿐만이 아니라 앨범 전체에 관악기들이 많이 쓰였어요. 확실히 Adult Oriented Rock 장르라는 느낌이죠. 관악기라고 하면 뭔가 젊고 어린 연주자들보단 중견 연주자가 많이 떠오르듯이.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이 곡은 확실히 록이죠. 리듬도 록 리듬이거니와, 악기를 활용하는 방식도 스윙이랑은 거리가 멀죠.



P : 무슨 뜻인가요?

L : 스윙, 그것도 빅밴드 편성의 스윙이라면 한마디로 '빽빽한 재즈'예요. 리듬 섹션이 탄탄하게 뒤를 받쳐주는 동안 브라스 섹션과 리드 섹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선율을 주고받는, 연주자도 관객도 쉴 틈이 없는 아주 쾌활하고 빼곡한 재즈죠. 그런데 'Sparkle'은 달라요. 악기와 코러스를 추가해가면서 고생스레 쌓아올렸던 볼륨을, 가장 극적이어야 할 순간(동영상 기준 1:55)에 완전히 놓아버려요. 다시 도입부의 찰랑거리는 기타 사운드만 남아 있어요. 스윙에서처럼 열렬하고 활발하게 움직임으로써 추구되는 자유가 있다면, 모든 걸 놓아버리는 순간에 오는 해방감도 있죠. 그래서 'Sparkle'은 스윙의 편성을 활용하면서도 스윙이 아닌 거죠.

P : 그 뒤로 이어지는 게 색소폰 솔로예요. 뭐랄까, 'Sparkle'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아무리 〈For You〉가 관악기를 많이 썼다고 해도, 이렇게 솔로 파트까지 내어주는 경우는 없잖아요. 아까 AOR 장르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젊은이들의 록과 어른들의 재즈를 혼합해서 '어른들도 즐겁게 들을 수 있는 록'을 만들어 냈다는 느낌.

L : 실로 그렇습니다. 한 마디만 첨언하자면, 전 색소폰 솔로가 시작하기 직전에 들리는 베이스 소리가 정말 좋아요. 무심한 듯 "퉁~"하고 튕기는. 마치 색소폰의 독주를 위해 엑셀 페달을 밟는 것처럼.



山下達郞 - 'Love  Talkin'(honey it's you)' in 〈For You〉(1982)


P : 전 이 곡이 좋아요. 단순하잖아요. 그루브한 16마디 베이스 리프가 시작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L : 확실히 호흡이 느려진 느낌이에요. 위에서 소개한 'Sparkle'과 비교해서도 그렇고, 앞 트랙인 'Loveland, Island'와 비교해서도 그렇죠. 그래서 곡 진행을 따라가기도 훨씬 쉽고, 부담 없이 틀어두고 딴짓하기에도 좋죠. 노동요로도 알맞은 곡이에요.

P : 저는 〈For You〉라는 앨범이 일종의 '드라이브 같은 앨범'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여기에 그 정수가 있다고 봐요.

L : 드라이브 같다?

P : 네. 자동차를 타고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그 드라이브요. 앨범 자켓부터 보세요. 도로변이잖아요. 도로가 아니라 도로변이란 말이에요. 어딘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게 아니라, 별다른 목적지 없이 '대충 그 주위나 돌아 볼까'하고 떠나는 드라이브, 도착 지점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보다 지나가는 풍경에 마음껏 눈을 돌릴 수 있는 편안한 드라이브요. 조수석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타 있을 것 같고, 아니면 뭐 굳이 그렇지 않아도 좋은. 그런 무방향의 속도감이 주는 이미지들이 이 앨범에는 있어요. 시원하고, 자유롭고, 파랗고.

L : 오, 그럴듯한데요. 그 정수가 'Love talkin'(honey it's you)'에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P : 말씀드린 것처럼 이건 '편안한 드라이브'란 말이에요. 속도를 겨루는 경주 같은 게 아니고, 주위에 마음껏 눈을 돌릴 수 있는 편안한 드라이브요. 'Sparkle'에서처럼 거침 없이 액셀을 밟는 것도 좋지만, 이 곡에는 적당히 설렁설렁 달리면서 조수석에 탄 사람과 시답잖은 '러브 토킹'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안정감이 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세련되고, 상쾌하고.


山下達郞 - 'Hey Reporter!' in 〈For You〉(1982)


P : 이 곡은 앞 트랙들과는 느낌이 확 다르죠. 뭔가 끈적하고. 시원함, 청량감과는 완전 대척점에 놓여 있는 트랙이에요.

L : 구성도 훨씬 단순해졌고, 이전까지의 앨범에서 쓰이지 않았던 불규칙한 사운드도 쓰였고, 좀 더 전형적인 펑크나 록 느낌에 치중한 트랙인 것 같아요.

P : 가사도 그래요. 뭐랄까, 기레기 까는 가사? "Hey Reporter, 약도 독도 안 되는 이야기, 날조해. 그게 네 사는 보람이라면."

L : 왜 이런 가사를 썼을까요?

P : 아마 이때쯤 야마시타 타츠로가 가십 기자들한테 시달리지 않았을까요. 대학도 때려치우고 1973년에 그룹 '슈가 베이브(シュガー・ベイブ)'로 데뷔는 했는데 반응은 시원찮고, 솔로 앨범도 내 봤지만 소수의 호평을 제외하면 무관심. 그렇게 야마시타 타츠로는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마감하는 듯 싶다가, 1979년 오사카를 중심으로 솔로 싱글 〈Let's Dance Baby〉의 B면 트랙 'Bomber'가 히트를 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는 내놓는 앨범마다 히트를 거듭하면서 1980년에제22회 일본 레코드 대상 베스트앨범상까지 수상해요. 〈For You〉를 내놓은 1982년에는 완전히 스타가 되어 있었겠죠. 기자들한테 시달리는 건 당연지사 아니겠어요?



L :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어요. 야마시타 타츠로가 1980년에 내놓은 앨범 〈RIDE ON TIME〉은 당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했는데, 그 중 수록곡인 'MY SUGAR BABE'가 닛폰테레비의 드라마 〈경찰-K〉(1980)의 주제가로 사용돼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드라마의 프로듀서이자 주연이었던 카츠 신타로(勝新太郎)가 야마시타 타츠로의 노래를 너무나도 좋아했던 나머지, 직접 전화를 걸어서 거의 강요하다시피 사용 허락을 받아냈다고 해요.

P : 카츠 신타로라면 영화 〈자토이치〉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잖아요? 배우이기도 하고, 감독이기도 하고, 가수에 드라마 프로듀서까지.

L : 맞아요. 다재다능했고 인기도 많았던 거물이었죠. 게다가 야마시타 타츠로에겐 대선배이기도 했고요.

P : 야마시타 타츠로는 어떤 반응이었나요?

L : 사용 허가를 해 주고 TV판으로 재녹음까지 해줬지만, 속으로는 조금 떨떠름했던 것 같아요. 영화 OST나 광고CM까지 폭넓게 만든 야마시타 타츠로지만, 아마 카츠 신타로라는 대선배의 '갑질'에 진저리가 나지 않았을까요. 이후 야마시타 타츠로는 프로그램 제작 발표회까지 끌려다녔는데, 당시 사진 속 야마시타 타츠로의 표정은 그야말로 '벙찐' 모습이었다고 해요.

P : 그걸 두고 기자들은 열심히 가십 기사를 만들어냈겠군요.

L : 그렇지 않았을까요. 아마 그런 경험들이 전부 녹아들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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