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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Aug 23. 2019

당신의 플레이리스트를 책임질 시티팝 앨범

그 다섯 번째, 〈SPACY〉(1977)

L : 안녕하세요.

P :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웬일로 2주 동안 연속으로 진행하는군요.

L : 우리가 저번에 야마시타 타츠로의 〈For You〉(1983)를 다뤘잖아요.

P : 그랬죠.

L : 야마시타 타츠로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워낙 걸출한 인물이니까.

P : 하하. 팬심이군요.

L : 그렇기도 하고요……(웃음). 사실이기도 해요. 이 시대의 일본 대중음악에 있어서 야마시타 타츠로의 영향력은 정말 크니까요. 퍼포머로서도, 디렉터로서도.

P : 그렇죠. 동의해요.

L : 그래서 오늘은, 야마시타 타츠로의 〈SPACY〉(1977)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합시다. 그에 더해서, 야마시타 타츠로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여보고요.



山下達郞  - 'Love Space' in 〈SPACY〉(1977)


L : 이 곡은 정말, 뭐랄까요. 'Spacy'하다고나 할까.

P : 사실 좋은 뜻은 아닌데……, '약 빤 것 같은'이라는 뜻이잖아요. 약에 취한 상태에서의 멍함. 그런 '우주적'인 느낌.

L : 앨범 커버부터가 딱 그렇지 않나요(웃음). 〈For You〉에서 느껴볼 수 있었던 가벼운 해방감과는 거리가 멀죠. 오히려 좋아하는 것들을 이것저것 모아둔 느낌. 그 모든 것을 양분 삼아 쭉 뻗어나가는 보컬.

P : 그래서 그런지 사운드도 화려하죠. 기타, 베이스, 드럼, 피아노, 바이올린 등등이 초장부터 한 번에 몰아쳐요. 아주 당당하죠. 그러면서도 불협화음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진짜 놀랄만한 점인 것 같아요. 이 곡도 그렇고, 앨범 전체에 해당되는 말인데, 수많은 악기들이 딱 적재적소에 정돈되어 있어요. 이런 디테일을 만들어내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요? 정말 눈치 안 보고 작업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L : 실제로도 그랬을 거예요. 야마시타 타츠로는 장인 정신으로 유명한 음악인이니까요. 앨범이 연이어 쪽박을 치면서 많이 힘든 와중에도, 야마시타 타츠로는 이 앨범을 만들면서 본인이 시도해보고 싶었던 걸 이것저것 해봤다고 해요. 시간과 경비가 쪼들리는 와중에도 할건 다 한 거죠.

P : 엄청나게 힘들었겠지만, 본인도 상당히 만족스러워했겠군요. 결과물도 좋고.

L : 아, 장인 정신 하니 생각난 게 있어요. 야마시타 타츠로는 솔로 활동을 하기 전, 몇 년간 '슈가 베이브(SUGAR BABE)'라는 밴드를 결성해 활동한 적 있는데요. 이때 함께 활동했던 오오누키 타에코(大貫 妙子)는 이렇게 말했대요. "그때의 추억은 야단맞은 기억 밖에 없다."

P : 그때는 야마시타 타츠로도 한참 초짜 아니었나요?

L : 초짜였죠. 슈가 베이브가 야마시타 타츠로의 음악인생의 첫 발짝이었으니까. 나이도 겨우 21살이었을 때고요.

P : 놀랍네요. 카리스마랄까, 자신감이 넘쳐 보여요. 그 어린 나이에 세션 멤버들을 리드하면서, 또 조율하면서, 그러면서 세세한 디렉팅과 믹싱까지.

L : 그래서일까요, 슈가 베이브는 꼬박 3년을 채우기 직전에 해산해 버려요. 유도리가 없었달까. 그래도 다행이죠. 그렇게 만들어진 슈가 베이브의 〈SONGS〉(1973)는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명반이 되었으니까요.



山下達郞  - 'Dancer' in 〈SPACY〉(1977)


P : 저는 이 앨범 중에 이 곡이 제일 좋아요. 정말 디테일 그 자체.

L : 맞아요. 처음엔 정말 단순하게 들려요. 긴장감 있는 드럼비트였다가, 드라마틱하게 합주. 그리고 다시 드럼이 도드라지는 비트, 그리고 다시 합주. '뭐야, 별 거 아니네.' 그런데 사실은 '별 거'죠. 너무나도.

P : 말씀하신 것처럼 단순하고 깔끔해 보이는 곡이지만, 사실 악기가 어마어마하게 쓰였어요. 드럼과 베이스는 기본이고, 전자기타 두 명, 퍼커션도 두 명, 트럼펫과 트롬본도 각각 두 명씩. 색소폰도 테너 색소폰과 바리톤 색소폰이 하나씩 있구요, 피아노도 어쿠스틱 피아노와 전자 피아노 하나씩. 바이올린도 하나 있고요. 사이렌휘슬까지 악기로 친다면 하나 더.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게 다 적절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게 놀랍네요.

L : 드럼이 혼자 다 하는 것 같아 보여도, 악기들이 느껴질듯 말듯 기막히게 끼워넣었죠. '이게 무슨 소리지?'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소리는 휘발되어 있을 정도로. 그렇게 줄을 타듯 긴장감을 유지하다가, 다같이 뛰어들어서 빰 빠밤 빰!

P : 진짜 재밌는 부분은 두 번째 합주가 끝나고 난 뒤예요. 베이스와 브라스가 티키타카 하듯 주고 받는 호흡이 정말 킬링포인트라니까요. 처음 들었을 때는 '베이스와 브라스가 함께 연주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잘 들어보면 베이스가 연주할 땐 브라스가 칼같이 멈추고, 브라스가 연주할 땐 베이스가 칼같이 멈춰요. 박자를 쪼개서 던지고 노는 것 같아요. 정말 손에 땀을 쥐게끔 하는 긴장감이죠.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피아노는 긴장감이 지루함이 되지 않게 만들어 주고요.

L : 연주 외적으로도 재밌는 부분이 있어요. 이 곡에서 어쿠스틱 피아노를 연주한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P : 사카모토 류이치(坂本 龍一)죠! 앨범 커버에 써 있어요. 반가운 이름이더라고요(웃음).

L : 맞아요.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 〈마지막 황제〉(1987)의 OST를 맡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죠. 앞의 두 영화에는 직접 출연하기도 했고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OST인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거예요.

P : 정말 뜻밖의 인물이었어요. 당신이 왜 여기서 나오세요, 같은.

L : 베이스는 핫피 엔도(はっぴいえんど)의 베이시스트였던 호소노 하루오미(細野 晴臣)가 맡았어요. 호소노 하루오미와 류이치 사카모토는 나중에 타카하시 유키히로(高橋 幸宏)와 함께 Yellow Magic Orchestra라는 일렉트로닉 팝 그룹을 결성하기도 하죠. 그 외에도 쟁쟁한 인물들이 많아요. 이들 모두 60~80년대 일본 음악의 기둥을 만들어 간 사람들이고요.



山下達郞  - 'Solid Slider' in 〈SPACY〉(1977)


P : 뭔가 몸을 흔들게 되는 곡이예요. 박자 타게 되고.

L : 그루브한 베이스가 신나죠. 잊을 만 하면 등장하는 플루트가 심심할 틈을 안 주고요.

P : 전체적으로 봤을 때 〈SPACY〉는 사운드 퍼포먼스에 중점을 둔 앨범 같아요. 시적인 노랫말과 가슴 절절한 감동보다는, 연주에 집중하고 소리를 뜯어보면서 느끼는 재미가 있어요.

L : 맞아요. 야마시타 타츠로의 음악은, 특히 초기 음악은 더더욱 그래요. 아무래도 어린 야마시타 타츠로의 취향이 그런 음악이었나 봐요. '벤처스(The Ventures)'의 음악을 통해 팝송에 발을 들였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야마시타 타츠로는 '비치 보이즈(The Beach Boys)'의 광적인 팬으로도 알려져 있죠.

P : 둘 다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뮤지션들이군요. 분야도 인스트루멘탈, 서프 같은.

L : 그런 음악들이 야마시타 타츠로 음악의 토양을 이루고 있는 거죠. 그렇잖아요. 후에 〈For You〉나 〈Big Wave〉(1984) 같은 앨범들을 보면 정말 비치 보이즈스러운 색깔이 확실히 드러나요.

P : 악기 편성을 보면 재즈의 영향도 분명 받았을 것 같아요. 일본은 또 유서 깊은 재즈 강국이기도 하니까요. 야마시타 타츠로가 청소년기~청년기를 보냈을 60~70년대는 일본이 다시 미국과 국교를 맺고 난 다음이잖아요. 다시 재즈가 인기를 얻으면서 전쟁 동안 단절되어 있던 새로운 재즈가 물밀듯이 들어올 시기였겠죠. 무라카미 하루키도 70년대에 재즈 바를 열었다고 그러니까. 〈SPACY〉는 정말 여러모로 영향을 받고, 여러모로 영향을 미친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L : 그러나 아쉽게도 〈SPACY〉는 상업적인 성공을 하진 못했어요. 당시 음반 판매 차트 59위를 반짝 찍고는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죠. 하지만 이후 야마시타 타츠로가 인기를 얻으면서, 이 앨범도 재평가 받게 돼요. 롤링스톤즈 재팬 선정 일본 100대 명반 14위에도 오르게 되고요.

P : 결국, 진심은 언젠가 빛을 보는 법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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