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만화 〈나루토〉가 완결된 뒤로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나루토〉에 이어 〈블리치〉까지 완결되며 '원나블'이라는 이름도 무색해져 버린 지금이지만, '나루토' 시리즈는 후속작 〈보루토〉를 비롯한 여러 스핀오프작을 선보이며 여전히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나루토〉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나루토〉의 스토리는 '핍박받던 소년이 세계를 구한다.'라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만화는 동료 간의 우정과 신뢰, 사랑 등을 강조합니다. 이로써 '나루토'는 '증오의 연쇄를 끊어내고 진정한 평화를 이룩한다'라는 주제를, 흥미로운 전개와 매력적인 캐릭터를 통해 담아내고 있습니다. 만화 속 이야기기는 하지만, 어쩐지 우리 삶에도 한 발 걸쳐 있는 것 같은 묵직한 주제입니다.
결말에서, 나루토는 마다라와 카구야를 물리치고 닌자 세계를 위험으로부터 구해냅니다. 마다라의 목적은 궁극의 환술 '무한 츠쿠요미'를 발동하여 모든 인간을 어떠한 다툼도 없는 꿈의 세계로 보내는 것이었고, 카구야의 목적은 한술 더 떠서 모든 인간의 차크라를 흡수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나루토는 '진정한 평화란 무한 츠쿠요미 같은 강제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반박하며, 타인에 대한 이해와 유대, 그리고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소년만화라는 장르에 걸맞게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일갈입니다.
그러나 책을 덮고 곰곰이 곱씹어보면, 무언가 석연찮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호기롭게 '유대와 사랑'을 외쳤던 나루토의 모습과는 달리, 만화가 이를 연출하는 방식은 상당히 의미심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나루토〉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이야기가 아닐까요.
보수적 정치 우화로서 〈나루토〉
〈나루토〉를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있다면, 바로 '사회적 차별'일 것입니다. 주인공인 우즈마키 나루토부터가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니까요. 과거 나뭇잎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구미호'가 몸에 봉인되어 있다는 이유로, 나루토는 거의 모든 마을 구성원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습니다. 그를 긍정해 주는 사람은 닌자학교의 선생님인 이루카나 카카시반의 동료들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루토와 대립하는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운명은 극복할 수 없다며 나루토를 '쓰레기' 취급했던 휴우가 네지부터 1부의 가장 강력한 적 중 하나였던 가아라, 그리고 사스케와 마다라를 비롯한 우치하 일족까지, 나루토와 대립한 대부분의 인물들 또한 지속적으로 사회적 차별을 받아 온 존재들입니다.
나루토의 적은 이들입니다. 나루토 역시 차별의 대상이지만, 그는 차별하는 주체와 적대하기보다는 또 다른 차별의 대상과 대립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루토가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지론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에피소드가 'VS 페인 편'입니다. 나뭇잎마을을 침공한 여섯 명의 페인을 모두 쓰러뜨린 뒤, 나루토는 이들을 조종하고 있던 흑막 '나가토'를 찾아가 논쟁을 벌입니다. 미수의 강력한 힘을 이용한 무력적 긴장으로 평화를 강제하자는 나가토에 맞서, 나루토는 스승 지라이야의 뜻을 이어받아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이해를 통해 증오의 연쇄를 끊어내자고 역설합니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나루토의 비전이 옳은지 그른지의 여부가 아닙니다. 그가 제시하는 비전의 형태입니다. 나루토는 '닌자 세계의 증오'를 낳은 부조리한 시스템을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개선하기보다, 증오를 멈추고 유대를 선택하는 개개인의 변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합니다.
다름 아닌 시스템의 희생자였던 나루토가 시스템의 개선보다 개인의 변화를 촉구하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나루토조차 이렇게 변화했다면 다른 누구라도 변화할 수 있으리라'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로 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현존하는 시스템의 문제를 교묘하게 은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는 차별받는 당사자에게 변화를 촉구하고 있으니까요.
나뭇잎마을이 변화하는 모습도 비슷하게 연출됩니다. 만화 속에서 나루토를 대하는 나뭇잎마을의 변화 역시 나루토와 대면한 캐릭터 개개인의 변화와 동치 됩니다. 작가는 네지, 시카마루, 사쿠라 등 캐릭터 각자가 '나루토도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었구나'라고 생각을 고쳐먹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마을 단위의 따돌림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결국 〈나루토〉는, 시스템의 희생자가 내적인 변화를 통해 시스템과 화해하는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변화가 쌍방향적인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루토가 변화한 만큼, 시스템 역시 변화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만화는 시스템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다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만화 전체를 통틀어 훨씬 비중 있게 묘사되는 것은 개인의 변화이며, 시스템은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듯 교묘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사단이 끝난 후에도 국가-닌자마을의 관계, 호카게라는 정치형태는 그대로입니다.
나가토를 감화시키고 돌아온 나루토를 영웅으로 추앙하는 나뭇잎마을의 모습은 그래서 '졸렬'해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루토처럼 고통받고, 변화를 촉구하는 다른 이들에게 "나루토를 봐! 사회에 의문 갖지 않고 스스로 강해졌잖아! 그러니 허튼 생각하지 말고 네가 노력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겹쳐 보여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