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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Mar 06. 2019

<신데렐라>vs<다크 소울3>
: 고전을 게임으로

재투성이의 세계와 그 이후

Aschenputtel과 Ashen One


   신데렐라라는 이름의 의미가 '재투성이'라는 건 이제 꽤나 유명한 사실이다. Cinder + ella = Cinderella. 어원이 되는 Cinder가 '재'라는 뜻이다.


   재밌는 점은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신데렐라의 어원이 Cinder이지만(프랑스어 Cendrillon, 스페인어 Cenicienta, 이탈리아어 Cenerentola), 독일에서만큼은 Zunder(Cinder)가 아니라 Asche(Ash)라는 점이다. 독일어로 신데렐라는 Aschenputtel이다. 물론 Zunder와 Asche 모두 재를 의미하니 의미상 하자는 없다. 그런데 굳이 단어를 바꾼 이유는 뭘까? 이는 그림 형제가 신데렐라를 독일어로 번역하던 시절, 부엌일을 돕는 하인을 Aschenbrödel(아센브뢰델)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주인공 신데렐라가 계모와 언니들에게 어떤 취급이었는지 생각해 보시길. 뜻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느낌을 잘 살린 번역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번역은 단순히 뜻을 옮기는 게 아니다. 그 시대, 그 공간에 알맞은 말로 다시 쓰는 일이다.


이 신데렐라 애니메이션도 1950년 디즈니 사의 의도에 맞게 번역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시간이 흘러 흘러, 2016년. 프롬 소프트웨어는 '소울 시리즈'의 최종장 <다크 소울3>을 내놓는다. 각계의 찬사를 받으며 시리즈를 호평 속에 마무리한 <다크 소울3>. 그 스토리를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태초에 세계는 짙은 안개에 뒤덮인 용들의 세상이었다. 그러던 중 세계에 돌연 '최초의 불'이 생겨났고, '그윈'이라는 왕은 그 불의 힘으로 용들을 물리치고 '불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최초의 불'은 점점 꺼져 갔고, 결국 '그윈'은 자신의 몸을 태워 '불의 시대'를 이어나갔다. 이후 '최초의 불'은 '그윈'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들에 의해 유지되었는데, 이러한 존재들을 '장작의 왕'이라 불렀다.


   <다크 소울3>의 배경은 이 '최초의 불'이 거의 꺼져가는 시대다. 그마저도 모자라 불을 계승할 만큼 강한 힘을 가진 존재조차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불의 계승을 주도하는 제사장(場)에서는 이로 인해 망해가는 세계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으므로, 이미 자신을 불살랐던 선대 '장작의 왕'들 중 일부를 되살려내 얼마 남지 않은 힘으로나마 불을 계승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부활한 왕들은 계승은 커녕 모두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플레이어는 '재의 귀인(Ashen One)'이 되어, 흩어진 왕들을 쫓는다는 사명을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게임의 슬로건인 'Prepare to die.' 의역하자면, '뒤질 준비 해라!'


   이건 완전 '신데렐라 스토리'다. 왕자를 만나서 밑바닥 인생 청산한다는 게 아니라, '불가능한 시련이 주어진 재투성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신데렐라 이야기 어디에 그런 얘기가 나오냐고? 모르겠다면 1857년 출판된 그림 형제의 판본을 번역한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글숲산책, 2009)를 보자.


   "너, 재투성이! 먼지 뒤집어쓰고, 더러운 주제에 결혼잔치에 가겠다고? 옷도 없고 신발도 없으면서 춤을 추고 싶다고!"
   그렇지만 소녀는 간절히 요청했지. 마침내 의붓 엄마가 대답했어.
   "한 그릇의 납작콩을 재에 쏟을 테니까, 그것을 두 시간 안에 골라내. 그러면 너도 함께 가게 해 주지."


   콩쥐팥쥐가 생각난다고? 정답이다. 심지어 이 뒤의 전개도 그렇다. 신데렐라는 하늘을 향해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자 새들이 날아와 재 속에서 콩을 골라낸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신데렐라는 콩을 다 골라내지만, 의붓 엄마는 신데렐라를  무도회에 데려가는 대신 더욱 어려운 임무를 준다. 이마저도 신데렐라는 해내지만, 의붓 엄마는 입 싹 닫고 친딸들만 데리고 무도회로 향한다.



않이! 무도훼애 대려다 준닦고 햍짜나요!!



   무도회에 가지 못한 신데렐라는 친엄마의 무덤으로 뛰어가 엉엉 운다. 그러자 무덤가에 자라 있던 개암나무에서 화려한 옷과 신발이 툭 떨어진다. 그 뒤로는 익히 아는 얘기다. 혼자 무도회장에 갔다가, 왕자 만나고, 춤추다가, 구두 떨어뜨리고, 구두 주인 찾던 왕자와 만나서 행복하게 산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억지로 구두에 발을 맞추려던 의붓 언니들이 발가락과 뒤꿈치를 잘라가면서(!) 구두를 신었다가 왕자한테 들킨다거나, 신데렐라의 결혼식에 갔다 오던 의붓 언니들의 눈을 새들이 파먹는다는(!) 정도랄까.


   그러니까, <다크 소울3>는 훌륭한 '2016년판 Aschen-puttel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왕보다 약한 존재인 '재의 귀인'에게 왕들을 잡아오라는 사명이 떨어진다. 그러면 '불의 시대'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공언하면서 말이다. '재의 귀인'은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딛고 왕들을 처치해 그들의 힘을 가져 오지만,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불의 시대는 결국 끝을 고한다.


새를 부리는 재투성이. 다 읽고 보면 섬찟하다.



   <신데렐라> '다시 쓴' <다크 소울3>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까. 다음의 세 요소를 가지고 <신데렐라>와 <다크 소울3>를 비교해 보자.


1. 거짓된 약속


   신데렐라와 '재의 귀인'은 모두 약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다. 그런 그들에게 아주아주 어려운 미션이 주어진다("재 속에 섞인 콩을 골라내!", "도망간 왕들을 데려와!"). 대신 보상은 달콤하다("무도회에 데려가 줄게.", "불의 시대는 유지될 거야."). 이들은 약속된 대가를 위해 힘쓰고, 그 결과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미션을 완수한다! 그러나 약속되었던 대가는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미션을 해결하는 방법은 많이 다르다. 신데렐라는 하늘을 향해 노래를 부르자 새들이 날아와서 도와준다.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반면 <다크 소울3>는 미칠 듯이 어려운 난이도를 플레이어의 직감과 학습, 인내심으로 조금씩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제는 캐치 프레이즈가 되어버린 'YOU DIED'


2. 체제의 내부적 붕괴


   신데렐라와 '재의 귀인'이 종속된 시스템, 다시 말해 이들이 속한 세계를 구성하는 체제는 모두 붕괴한다. <신데렐라>에서 세계의 원리는 의붓 엄마&언니의 명령이다. 한 편, <다크 소울3>에서 그것은 '불의 시대'를 구성하는 구조, 즉 장작의 왕을 희생시켜 불을 유지한다는 기획이다. 

   이들 체제는 모두 붕괴하는데, 이는 외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다. 체제는 내부의 문제에 의해 스스로 붕괴한다. <신데렐라>의 의붓 엄마&언니는 이야기 상 태생부터 사악하고, 욕심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를 지탱할 발을 훼손한다. <다크 소울3>에서 '불의 시대'는 '최초의 불'을 유지하는 '장작의 왕'을 불 스스로가 파괴함으로써 시대를 이어나간다는 태생적인 모순을 가진다. 이러한 태생적 문제점에 의해 1.과 같은 거짓된 약속이 도출될 뿐만 아니라, 체제는 예견된 파국을 맞는다. (<신데렐라>에서 의붓 언니들의 눈을 파먹은 것은, 그러니까 막타를 친 건 새이지만 그러한 형벌 역시 그들의 태생적 사악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구체제(ancien regime)의 모순을 풍자한 삽화. 아래가 장작의 왕이다.


3. 붕괴 이후


   이렇게 많은 유사점을 보이는 <신데렐라>와 <다크 소울3>이지만, 체제의 붕괴 앞에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많이 다르다. 신데렐라는 가만히 붕괴를 받아들인다. 그녀를 둘러싼 세계가 '의붓 가족의 세계'에서 '왕자의 세계'로 바뀌는 동안, 그러니까 고난의 세계가 탈-고난의 세계로 전이되며 궁극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동안 신데렐라가 맡은 역할은 딱히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살게 된 '탈-고난의 세계'에서도 역시 그녀가 맡을 역할은 딱히 없다.

   반면 <다크 소울3>에서 '재의 귀인'은 신데렐라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그 역시 세계의 전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가는 입장이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은 '최초의 불'의 최후를 그의 선택을 통해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최초의 불'을 잠시나마 계속 이어 갈 수도 있고, 불은 꺼버리되 불씨를 간직할 수도 있으며, 불이고 뭐고 다 없애 버릴 수도 있다. 이처럼 '소울 시리즈'의 세계, 정확히는 '불의 시대'는 각각 다른 결말을 맞는다. 이 과정에서 '재의 귀인'의 선택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기에, '재의 귀인'은 '불의 시대'가 끝난 이후의 세계에서도 각 선택에 걸맞는 나름의 역할을 맡는다.


   이는 <신데렐라>가 수준 낮은 작품이고 <다크 소울3>가 수준 높은 작품이어서가 아니다. <신데렐라>가 구전되고 출간되던 시기의 유럽에선 평면적인 권선징악 스토리가 필요했고, 또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2016년은 그렇지 않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보다 입체적인 스토리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다크 소울3>는 <신데렐라>와 다른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게, '번역'이란 그 시대 그 공간에 맞게 다시 쓰는 것이라니깐.


덤벼라, 신데렐라! (합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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