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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Jan 10. 2020

두 남자가 여행에서 얻은 것

- 오디세이아와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을 비교해보는 윌슨

안녕! 나는 윌슨이야! 맞아! 네가 생각하는 그 윌슨. 그 배구공에 대충 손자국 찍힌 것처럼 생긴 윌슨! 글머리부터 대문짝만하게 “캐스트 어웨이”라고 적어두었는데, 당연히 알겠지! 캐스트 어웨이가 얼마나 크게 흥행한 영화인데! 전 세계적으로 약 4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이 몸이 그 영화의 주연이라 이 말씀이야.   

  

오늘은 나와 함께 영화에 출연한 조연 척 놀랜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해. 척 놀랜드는 톰 행크스가 연기했는데, 이 친구 이 때 연기력이 물이 올랐었지. 물론 내 표정 연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무인도에 표류하는 이야기라 그런지 이 친구랑 로빈슨 크루소랑 많이 비교를 하더라? 그런데 사실 로빈슨 크루소와 이 친구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어.     


로빈슨 크루소는 고뇌하지 않아!     


로빈슨 크루소의 행적을 잠시 살펴볼까? 이 사람은 무역을 나선 선원이지만 배가 난파해서 무인도에 혼자 표류하게 되지. 그런데 이 사람이 혼자서 뭘 해내는지 알아? 혼자서 농사, 목축, 오븐 만들기, 배 만들기, 양산 만들기, 요새 구축, 동굴 만들기 등등 어마어마하지. 요새 나오는 베어 그릴스? 그 사람보다 더 대단한 것 같더라. 게다가 그냥 발자국만 보고도 누가 몇 명이 왔는지 알아내기까지 해! 이 정도면 초능력자에 가깝지. 정신적인 면을 또 살펴볼까? 이 사람은 거의 외로움이 없어. 중간 중간에 신을 찾으며 종교적인 모습을 보이긴 해. 그런데 그 신을 찾는다는 모습이 ‘아, 하느님이 그러셨구나! 와! 대단해!’ 이런 느낌이야. 게다가 로빈슨 크루소는 무려 프라이데이라는 한 사람을 언어와 종교 등을 가르쳐서 ‘문명화’시켜버리지. 이 정도면 거의 철인 아니겠어?     



우리 친구 척은 항상 괴로워하고 고뇌하는 친구야. 이 친구는 문명사회에서는 능력 있는 친구였지. 그런데 비 문명사회로 진입하자마자 무능력해지지. 불을 만드는 것도 여러번 실패하고, 물고기도 못 잡고, 항상 아파하고 외로워하지. 물론 중간부터 내가 이 불쌍한 친구를 위로해주고 이끌어주지만. 이 녀석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한번은 날 집어던지지 뭐야. 물론 울면서 빌기에 봐줬어. 불쌍한 친구잖아.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 대견해. 어린아이처럼 나한테 자랑도 하고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척은 자신에 대해 고뇌하게 돼. 문명사회에서 이 친구는 항상 바쁘게 지내지. 그래서 자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어. 사랑하는 연인과도 긴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사람들이 가장 기다린다는 택배 일을 하면서 이 친구는 자기를 기다려줄 시간이 없었어. 그런데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면서 이 친구는 남는 게 시간이 돼. 그 남는 시간에 항상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되는 거야.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 정말 간단하지만 어려워. 답을 구하는 것도 어렵고, 이 질문을 던지는 것도 어려워.왜냐하면 이 질문은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생각을 시작했다는 증거이거든. 진짜로 묻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 거든. 이 질문은 수많은 질문을 파생시켜. 우리가 인생에서 하는 고민은 대부분 나는 누구인가? 에서 출발한 고민들이라고 말할 수 있어. 이런 고민을 공유하지 않는 로빈슨 크루소는 우리 친구 척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인물이지.     



이런 고민을 공유하는 인물이 한 명 있어. 바로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야.     


이 사람의 이야기를 조금 살펴볼까. 이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영웅으로 나와. 트로이를 함락한 대단한 전쟁 영웅이지. 지혜가 대단한 사람으로 묘사되는 이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큰 고난을 겪게 돼. 운명의 시련을 무려 10년이나 겪으면서 바다를 떠돌게 되지. 이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 고난이나 역경을 침착하게 해결하는 영웅적인 모습을 보게 되지. 그러면 로빈슨 크루소 같은 인물이지 않느냐고? 아니야. 내가 처음에 말했잖아. 이 사람은 고민을 한다고.     


바로 “나는 왜 돌아가야 하는가?”라는 고민이지.     


오디세우스는 사실 칼립소라는 요정의 섬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낸 기간이 꽤 길어. 10년의 방황 기간 중 9년이라는 시간을 이 섬에서 놀면서 지내지. 그 전까지는 수많은 고통을 겪었고. 이 섬에 도착해서 집에 돌아가려는 시도를 멈추자. 운명은 집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이대로 눌러앉으라는 듯 시련을 멈추게 되지. 이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어? ‘집에 가려면 그 고난을 또 겪어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영웅은 영웅스럽게도 이 편한 환경을 떨치고 고난이 가득한 바다로 나아가. 그리고 집을 어지럽히던 건달들을 몰아내고 평화로운 가정을 다시 찾지.     


고대의 오디세우스와 현대의 우리 친구 척이 표류 생활에서 얻는 것은 이 고민의 해답이야. 바로 “나는 누구인가?”에 답변할 수 있는 정체성이지.     


나는 척이 탈출하던 중에 파도에 밀려서 뗏목에서 떨어지게 돼. 사실 그거 일부러 그런 거야. 척이 실수로 날 놓치기 된 것이 아니야. 고뇌와 시련에서 정체성을 알게 된 척에게는 이제 나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거든. 항문기에서 벗어난 아기가 기저귀를 떼는 것처럼.      


너도 너만이 알고 있는 내가 있지는 않니? 너의 표류는 고뇌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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