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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Apr 24. 2020

크툴루 신화에 대한 이야기

크툴루 신화와 호러계의 아버지 러브 크래프트

필자는 이렇게 생긴 인형을 무서워한다.



여러분이 평소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묻는다면 여러분은 아마 다양한 답을 내놓겠지요. 바퀴벌레, 귀신, 사고, 광장, 심해 등등 사람들은 저마다 각양각색의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공포의 대상을 마주치면 동공이 확장되고, 식은땀이 나며, 닭살이 돋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지요. 극도의 긴장 상태에 돌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긴장 상태에서 사람은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심리적으로 고통 받습니다. 극도의 공포와 공포가 유발하는 행동 저해는 장애의 한 갈래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하여 즐기는 사람도 있는데요. 잠깐의 긴장과 고통이 지나면 밀려오는 쾌감을 만끽하는 사람들이죠. 오늘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크툴루 신화의 크툴루의 상상도


크툴루 신화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크툴루 신화는 20세기 초에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많은 공포, 판타지 장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공포 소설입니다. 크툴루 신화는 서양의 몇몇 작가들의 편지 교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라는 공포소설 작가를 중심으로 서신을 주고 받은 이 작가 그룹은 러브크래프트 써클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들은 한 세계관을 공유하며 연작을 썼습니다. 그리고 어거스트 덜레스라는 인물이 이 연작을 한데 모아 체계를 부여하고 정리를 했지요. 이렇게 완성된 소설군을 우리는 크툴루 신화라고 부릅니다. 크툴루 신화는 보통 인간이 항거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다룹니다. 아주 괴기하고 기묘한 사건에 주인공이 휘말리고, 나름의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 배후에 어떠한 저항도 소용없을 무시무시한 존재가 있음을 깨닫거나, 그 존재를 만나게 되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죠. 물론 후에 이 작품을 정리하게 된 어거스트 덜레스가 선과 악의 대결 구도를 작품군에 적용하게 되면서 크툴루 신화만의 음울하고 허무한 느낌은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초기의 크툴루 신화 작가들의 음울하고 염세적인 태도는 시대적 배경에서 왔을 거라 추측이 됩니다. 당시 1차 세계대전과 벨 에포크(Belle Époque) 그 좋은 시기의 종결을 맞으며 서구권의 사람들은 허무주의에 시달려야했습니다. 모든 것엔 단 하나의 진리가 있고, 인류는 영원히 발전을 지속하며, 결국엔 다 나아질 것이란 믿음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졌죠. 사람들은 이보다 더 허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요. 아직 2차 세계대전의 충격이 닥쳐오지 않았던 이 시기를 우리는 이제 쁘띠(petit) 부조리극 시대라고 부릅시다. 인류와 사회가 자아에 대한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부조리극 시대에 비해 아직 이때는 자아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직 이때는 충격과 공포가 제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않았고, 사람들은 그저 충격과 공포의 그림자를 보고 본모습을 상상해야만 했던 때니까요.     


피카소의 '게르니카'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영향을 받은 작품 중 하나이다.


쁘띠 부조리극 시대를 지나 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크툴루 신화는 미국 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부조리극 시대가 열리며 염세주의와 허무주의가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 덜레스가 ‘아캄 하우스’라는 출판사를 통해 출판하게 된 이 소설들은 가히 폭발적이라 말할 수 있는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 소설 마니아들은 이 덜레스 시기 이후의 크툴루 신화를 제대로 된 크툴루 신화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더 극단적으로는 덜레스가 크툴루 신화를 망쳤다고도 하지요. 앞서 말했듯이 어거스트 덜레스가 크툴루 신화에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집어넣었기 때문입니다. 광기가 넘치고 기괴한 세계에 선과 악이라는 질서가 들어가며 작품을 망쳤다는 평가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은 평가가 갈리는 러브 크래프트 이후의 작가들의 소설을 배제하고 러브 크래프트 생전에 쓰인 크툴루 신화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러브 크래프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크툴루의 부름(The call of Cthulhu)가 있습니다. 이 작품이 바로 크툴루 신화의 시작이 되었기 때문인데요. 무슨 내용인지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고고학자였던 의문의 죽음을 당한 종조부의 행적을 탐색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기묘한 조각상에 얽힌 한 고대 종교를 추적하는 도중에 죽음을 당한 종조부의 진실을 알게 되며 주인공 또한 이를 추적하고자 하죠. 추적 도중 자신이 가진 조각상과 똑같은 조각상을 가졌던 난파선 선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주인공이 그 선장을 찾아갔을 때는 선장의 일기만 남아있고 선장은 의문의 사고를 당해 죽은 상태였습니다. 선장의 일기를 통해 주인공은 ‘크툴루’라는 고대 종교의 신인 존재를 알게 됩니다. 이 존재가 세상을 쉽게 파멸시킬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자신도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으로 소설이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부제목은 주인공이 죽은 후에 남긴 수기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줄거리를 쭉 살펴보면 평범한 미스테리 추리극이죠. 러브 크래프트는 줄거리나 소설의 구성 면에서는 크게 혹평을 받아왔습니다. 너무나 전형적이고 틀에 박힌 구성이 반복된다는 것이죠. 이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클리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구성에서도 으스스함을 느끼게 만드는 묘사가 바로 러브 크래프트의 진가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알아가면서 점점 미쳐가는 사람의 심리를 아주 흡인력 있게 묘사했지요. 비극이 운명에 저항하다가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 기괴극은 운명에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포기하고 절망하다 미쳐버리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글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현대에 와서 이 글을 읽게 되면 전혀 무섭거나 재밌지 않거든요. 물론 취향과 상상력이 독특하신 분들은 재미와 공포를 느낄 수 있겠지만, 러브 크래프트가 주로 다루었던 미지에 대한 공포는 이미 현대에 와서는 너무 많이 극복된 공포가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예민하기도 하며 가장 피로해지기 쉽다는 후각처럼, 공포도 아주 예민하여 피로해지기 쉽고 둔해지기도 쉽습니다.



러브 크래프트의 공포는 이제 사람들에게 공포가 아닌 것이죠.     



이제 러브 크래프트의 공포는 공포를 넘어서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무라카미 하루키, 스티븐 킹 등 여러 작가들이 러브 크래프트의 세계관을 탐구하고 영향을 받았죠. 현대에 형성된 대부분의 공포와 관련된 작품들, 서브 컬쳐 작품들,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작품에는 알게 모르게 러브 크래프트와 크툴루 신화의 향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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