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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Sep 29. 2015

<파니 핑크>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알아야 할 세 가지 이야기

1


파니 핑크의 사랑이 죽었다. 그녀는 애도한다. 시도 때도 없이 달그락대는 해골 귀걸이를 벗지 못한다. 검은 모자, 검은 외투, 검은 속옷을 벗지 못한다. 파니는 시체를 붙들고 놓아 주지 못한다. 과거의 사랑들이 남긴 아쉬움과 미련을 모두 지고 살아가느라 그녀의 인생은 너무나 무겁다. 해서 웃지 못한다. 대신에 여전히 펄펄 끓는 열정으로 죽음을 준비한다. 그런데 그녀와 비슷한 사람이 많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이른바 ‘죽음준비수업’은 성황을 이룬다. 자신의 과거를 애도하는 자들 사이에 끼어, 파니는 세상 가장 슬픈 여인이 되길 자청한다. 추모는 슬픔을 씻어내지만, 애도는 슬픔을 몸의 일부로 만든다 했던가. 


2


파니가 사는 오래된 아파트는 하나의 거대한 정신병동이다. 고양이를 수십 마리나 키우는 여자, 사람만 만나면 욕설을 퍼붓는 남자, 온몸에 물감을 바른 게이 점성술사까지. 그들은 자신의 세계에서 한 발짝도 나갈 생각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방음이라고는 안중에도 없는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일상을,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공유한다. 따로, 또 함께 사는 이 이상한 동거는 기묘한 균형을 이룬다. 서로 너무나 다른 그 수많은 적들 중 그 누구도 다른 이를 해하지 않는다. 괴상하고 뒤틀린 이미지의, 세련됨이나 따스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이 공간이, 겉보기와는 다르게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낫다고 하면, 아무래도 무리려나?


3

오르페오라는 ‘의존 기계’는 실상 파니의 삶을 좀먹는 벌레일 뿐이다. 파니에게 간만에 찾아온 희망을 이용해 사기를 치질 않나, 대놓고 지갑을 털질 않나, 시한부에, 오갈 데 없는 자신을 받아 준 파니에게 “넌 언제나  사랑받으려고만 하지. 한번이라도, 누구를 위해서 희생해 본 적 있어?”라고 호통까지 쳐댄다. 그런데 바보 같은 파니는 이 말을 듣고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가 원하는 금괴를 선물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지불하고, 외계에서 자신을 찾으러 올 거라는 그의 거짓말을 완성시키기 위해 헬기 이륙음을 녹음한다. 


오르페오는 그녀가 찾던 사랑이 아닌데도, 곧 죽을 것을 뻔히 아는데도, 그녀는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끝내 오르페오가 모든 소원을 이룬 채 파니를 떠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준비하며 만든 관을 창 밖으로 던져 버린다. 그녀는 이제 죽을 수 없으므로. 지금까지는 사랑 ‘받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사랑 ‘할’ 수 있으므로. 파니 핑크의 사랑이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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