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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Jul 17. 2016

<본 투 비 블루>

실패를 벗어나는 이야기의 세 가지 경우 2

<데몰리션>, <본 투 비 블루>, <백 엔의 사랑>. 우연히도 최근에 본 세 편의 영화는 모두 ‘인생에 실패한 주인공이 거기서 벗어나는 과정’을 그렸다. 그래서 세 영화를 비교해보려 하는데 원형이라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양상이 약간씩 달라 함께 두고 보면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세 편을 연작으로 써볼 참이다. 참고로 내가 좋아하는 순서는 역순이다. 


영화 <본 투 비 블루>

-쳇 베이커도 에단 호크도 아닌 어떤 인간의 몰락


<본 투 비 블루>는 예상보다 훨씬 따뜻한 영화였다. 제목만 봤을 땐 청춘의 아이콘이자 안타깝게 요절한 제임스 딘을 다룬 영화 <라이프>가 떠올랐더랬다. 제임스 딘의 우수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응시하는 <라이프>가 도리어 <본 투 비 블루>라는 제목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다. 한데 어찌 보면 당연한 차이다. 반항아 기질을 빼면 성실한 배우였던 제임스 딘과 달리, 쳇 베이커는 천재 뮤지션이라는 타이틀만큼이나 섹스, 마약에 대한 구설수로도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쳇 베이커의 도덕적 흠결을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다. 이런 사람의 삶을 손쉽게 정당화해줬다간 많은 이의 공감을 얻기 힘들 터다.


그래서 <본 투 비 블루>가 마련한 방책은 이렇다. 쳇 베이커가 망가져 가는, 꼴사나운 시기 대신 이미 완전히 좌절한 시점(앞니가 모두 부러져 더는 트럼펫을 불 수 없게 된 때)을 이야기의 씨앗으로 삼는다. 유일한 직업이자 정체성을 잃어버린 몰락한 천재, 우리는 그의 악행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그가 안쓰러워진다. 그런 다음 가상의 여자친구 제인(카르멘 에조고)를 등장시킨다. 아름답고, 사려 깊은 데다가, 일편단심의, 독립심까지 강한 한 마디로 완벽한 이 여성은 쳇 베이커가 재기하는 데 결정적인 조력자가 된다.

현실의 쳇 베이커가 의치를 끼우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색깔을 구축해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다시 일어서게 된 과정은 감독의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에 기반한 드라마만이 갖는 정서적 울림은 다소 반감된다. 그러나 여기엔 대신 에단 호크가 있다. 유약하지만 지적이고 강한 내면을 가진 이미지로 기억되는 에단 덕분에 <본 투 비 블루>는 한 편의 픽션으로서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하여 트럼펫과 음악에 대한 사랑과 집념, 지난한 흑역사 때문에 가려졌던 쳇 베이커의 긍정적인 일면이 드러난다. 벼랑 끝까지 몰렸던 한 연약한 인간의 회복이 위로와 용기를 전해준다. 


말하자면 <본 투 비 블루>는 쳇 베이커의 존재론적 우울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식의 영화가 아니라, 우울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이 고난을 이기고 새롭게 출발하는 성장영화에 가깝다.그리고 음악. 수많은 음악 팬과 옛 연인들이 부족한 인간성을 뻔히 알면서도 그를 애증하게 했던 쳇 베이커의 명곡이 흐를 때면 우리는 단번에 그를 이해하게 된다. 아니 이해보다는 ‘사로잡힌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이성이 무력해지고 감성이 작동하는 순간, 인간성을 상쇄하는 음악성이 만개하는 순간, 도덕은 멈추고 ‘인생의 쓸쓸함’ 같은 게 관객 저마다의 마음 속을 불고 지나간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쳇 베이커도 에단 호크도 아닌 한 인간이 자진해서 다시 몰락(fall)을 선택할 때 우리는 어떤 필연성 혹은 당위성마저 떠올리게 된다. 우울이 천성인 인간, 그런 게 있을 수도 있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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