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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Jul 19. 2016

<백엔의 사랑>

실패를 벗어나는 이야기의 세 가지 경우 3

<데몰리션>, <본 투 비 블루>, <백 엔의 사랑>. 우연히도 최근에 본 세 편의 영화는 모두 ‘인생에 실패한 주인공이 거기서 벗어나는 과정’을 그렸다. 그래서 세 영화를 비교해보려 하는데 원형이라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양상이 약간씩 달라 함께 두고 보면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세 편을 연작으로 써볼 참이다. 참고로 내가 좋아하는 순서는 역순이다. 



<백엔의 사랑>

-내 인생의 가격표를 떼는 방법


여기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여자가 있다. 그녀에게 인생은 지겨우면 언제든 꺼버리면 그만인 비디오 게임 같은 것이다. 서른두 살 먹은 구제불능의 캥거루족 히키코모리, 어떻게 봐도 답답하기 그지없는 개인의 불행이자 사회적 문제인 이 불편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영화의 태도는 담담하기만 하다. 주인공 이치코(안도 사쿠라)가 고민하거나 괴로워하는 장면 하나 넣지 않고 심지어 끔찍한 성폭행을 당했을 때도 어이없는 해프닝을 묘사하듯 가볍게 흘려보낸다. 영화의 분기점이 되는 복싱 훈련이 등장하기 전까지 1시간 10분 동안 <백엔의 사랑>은 어떠한 사건에도 무게를 두는 법 없이 미지근한 온도로 이치코의 하루하루를 기록한다. 마치 이치코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함께 살아가보자는 듯이.

모든 물건이 단돈 백 엔인 편의점 ‘백엔생활’에서 매일 밤 과자와 소다를 사먹던 이치코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에서 쫓겨나자 백엔생활의 점원이 된다. 자기 생활의 전부였던 그곳이 이치코의 첫 직장이 되는 건 자연스럽다. 거기엔 매일 18시간을 근무하느라 우울증에 걸린 점장이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치근덕대는 음흉한 돌싱남 아저씨도 있다. 아무런 접점도, 감정의 교류도 없는 이들에게도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 백엔생활에서 벗어날 여지가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언제까지나 ‘싸구려 인생’이라는 것. 그런 이치코가 변화하는 건 복싱 선수 ‘바나나맨(매일 바나나만 한 무더기씩 사가서 붙여진 별명, 아라이 히로후미)’ 때문이다. 바나나 값 대신 받은 티켓으로 경기를 보러 갔던 것을 계기로 이치코는 단번에 복싱에 매료된다. "서로 치고받고 나서 등을 두드려주는 게 멋있어보인다”는 조금은 엉뚱한 이유로 매일 체육관에서 땀을 흘린다. 

처음에는 가벼운 건강관리 정도였다. 그런데 돌싱남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바나나맨에게 버림받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자 그 분노를 어쩌지 못해 오로지 복싱에만 몰두한다. 누구라도 붙잡고 펀치를 날리면 좋으련만 이치코의 주먹은 다만 허공을 가른다. 상상의 적을 향해 쉐도우 복싱을 할 때, 그럼에도 이치코의 눈빛은 너무나도 매섭고 또렷하다. 그녀의 적이 돌싱남인지 바나나맨인지 아니면 무력한 자기 자신인지 관객은 알 수 없다. 다만 체육관 벽에 쓰인 ‘Hungry, Angry’로 짐작할 뿐이다. 처음 보는 이치코의 눈빛, 그것은 처음으로 삶을 사랑하려는 자가 느끼는, 아무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분노다. 마침내 영화의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된다. 흔히 보아왔던 복싱 영화의 그것처럼 신나게 질주하기 시작한다. 이치코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백엔생활의 군살은 빠지고 활기 넘치는 복서의 자신감은 붙는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데뷔전을 치를 때, 제대로 주먹 한 번 날리지 못하고 상대의 펀치를 받아내는, 그러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이치코의 집념을 볼 때 눈물을 참기 힘들다. <백엔의 사랑>의 복싱 경기는 때리는 자의 타격감 대신 견디는 자의 오기로 관객과 하나 된다. 그런데 내가 꼽는 명장면은 따로 있다. 한참 훈련에 열중하던 시절 아버지가 불쑥 찾아오고 부녀는 함께 저녁을 먹는다. 아버지가 “복싱을 한다고... 젊은 땐 이것저것 해보면 좋지.”라고 격려하자 이치코가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솔직히 젊지는 않지.” 웃으며 답하는 이치코는 분명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자기 삶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에서 나오는 여유. 억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행복의 비밀은 어느새 그녀 것이 되었다. 설사 앞으로 복싱을 할 수 없게 된다 해도 이제 상관없다.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그거면 일단 충분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를 살아낼 수 있는 용기, 그거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덧붙임)


사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인간이 복싱을 통해 삶의 의지를 되찾는 이야기는 그간 많이 보아왔고,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도 성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될 것이다. 감동 안 하기 어렵고 그래서 감동하고 나면 조금 머쓱해지는 그런. 그런데도 이 영화를 지지하는 것은 복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의 이치코의 일상을 스케치하는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감독은 무료함이 뭔지, 무력감이 뭔지 아는 사람인 것 같다. 나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보다 <백엔의 사랑>이 훨씬 좋다. 영화음악도 일품인데, 영화의 저렴한(?) 분위기랑 참 잘 어울린다. 극장을 나와서 하 수상의 '되는 게 없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엄청 신나고, 엄청 공감되면서, 조금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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