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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Jul 29. 2016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어머니 아닌 어머니에 대하여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엄마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011, 민규동) 같은 영화를 보고 덤덤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엄마의 죽음은 상상만 해도 너무나 슬프다. 그런데 이런 작품들은 ‘어머니’라는 기표(세계의 기원이자 무조건적 사랑의 보고)를 강화하는 역할도 한다. 모성을 부여받은 여성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한정되고 억압된다. 다시 말해 ‘어머니’는 주체가 아니라 나를 낳고 기르고 보살펴주는 대상이자 고단한 삶의 안식처다. 성스러운 어머니. 이 확고한 이미지는 금기를 만들고 모성 바깥의 행동을 하는 여성을 비난하는 근거가 된다.

영화 '마더'(2009)

<마더>(2009, 봉준호)의 어머니(김혜자)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살인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자애롭고 순진한 줄만 알았던 그녀가 욕망을 가진 주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행동은 아들에 대한 사랑인 동시에 자기 욕망의 실현이다. 동명의 앞선 영화 <마더>(2003, 로저 미첼)에서 주인공 메이(앤 레이드)는 딸의 연인과 사랑에 빠진다. 이것은 어머니가 자궁이 아닌 성기를 가진 여성이자 주체임을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로저 미첼의 대표작이 남성의 여성 판타지를 그린 <노팅힐>(1999)이라는 것이다. 그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마더>는 <노팅힐>에 대한 반성이었을까.

영화 '마더'(2003)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페드로 알모도바르)은 같은 목표에 다른 방식으로 다가간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마뉴엘라(세실라 로스)는 슬픔을 가슴에 묻은 채 다른 여성들과 연대해 삶을 추진해 나간다. 그녀의 슬픔은 타인을 사랑하는 동력이 되고, 그녀의 도움으로 출산할 수 있었지만 끝내 죽음을 맞이한 로사(페넬로페 크루즈)의 아이를 키우는 데까지 미친다. 이는 언뜻 전통적 의미의 모성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모성이 아닌 여성성의 발현이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사건을 겪고도 여성 특유의 연민과 연대의식으로 삶을 지속하는 서사, 그것은 여성성의 강인함을 긍정하는 것이다.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The Wait, 2015, 피에로 메시니)은 기본적으로 아들의 죽음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에 대한 드라마다. 안나(줄리엣 비노쉬)는 아들의 죽음을 모르고 찾아온 아들의 여자친구 잔(루 드 라쥬)에게 아들이 곧 올 것이라고 거짓말하고 그녀에게서 아들의 흔적을 찾으며 아들의 죽음을 유예한다. 그녀의 기괴한 집착과 분노는 안나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오랜 집사 피에트로(조르지오 콜란젤리)를 떠나게 만든다. 영화는 상징을 활용해 안나를 마리아에, 아들을 예수에 비유하는데 여기서 발견되는 건 마리아의 성스러움이 아닌 그녀가 한 아들의 어머니이자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요컨대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의 슬픔은 성(聖)과 속(俗)의 교차점이다.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동정녀 마리아는 예수를 기다리지 않았다. 아니 기다릴 수 없었다. 그러나 안나는 아들을 기다린다. 애써 슬픔을 감추는 대신 욕망의 주체가 된다. 안나의 아들이 돌아오기로 한, 하지만 올 수 없었던 부활절 다음날 그의 죽음을 알게 된 잔은 떠난다. 하지만 마지막 포옹의 순간, 잔은 안나의 기행이 그녀가 느끼는 것과 같은 슬픔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함께 나눈다.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아닌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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