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양 Jun 08. 2017

<보안관>

본격 마녀사냥 권장 영화

<미생>은 맞고 <보안관>은 틀리다 


<미생>의 오과장, 아니 이성민이라는 배우를 좋아한다. 인생의 쓴맛을 아는 듯한 눈빛과 말투, 거기에 젠체하지 않는 소탈함까지. 한국에 살며 자기 나름의 '산전수전' 같은 걸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연기에서 얼마간의 위로를 받았을 거다.



이성민의 연기는 보편적이다. 지역과 정파와 세대를 불문하고 자연스럽게 공명한다. 그는 문재인도 안철수도 홍준표도 아니다. 물론 배역을 맡긴다면 세 역할 중 어느 것이라도 훌륭하게 소화하겠지만 말이다. 다만 아무리 연기 내공이 쌓여도 절대, 심상정만은 될 수 없다. 왜냐면 그는 대한민국의 아저씨이기 때문이다. 


아저씨 자체가 싫은 건 아니다. 뭣보다 나도 아저씨다. 어쩌면 멋있는 아저씨에 대한 갈증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대다수의 별로인 아저씨(라고 쓰고 '꼰대'라 읽는다고 쓰고 싶은 순간 나는 비로소 아저씨가 되었다)가 더 거슬리고 비난 욕구가 치밀어 오르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보안관>과 <미생>은 둘 다 아저씨 영화다. 다만 후자는 좋은 쪽으로 그랬는데 전자는 영 좋지 않은 쪽으로 끝 간 데 없이 가버렸다. 



<베테랑>은 맞고 <보안관>은 틀리다
 
얼핏 <보안관>은 <베테랑>과 닮아 보인다. 골치 아픈 현실은 잠시 접어두고 증강현실 판타지 세상에서 한바탕 놀아제끼는 복수극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엔딩 타이틀에서 캐릭터의 매력을 강조하는 코믹스식 레퍼런스를 활용했다는 것도 닮았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베테랑>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막 사는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의심할 만한 분명한 근거를 계속해서 던져주는―누가 봐도 틀림없는 악인으로 규정하는―반면 <보안관>은 영화가 끝날 무렵에 이르러서야 종진(조진웅)이 악당임을 깜짝 공개한다. 오히려 러닝타임 내내 종진은 누가 봐도 선량한 사람이다. 합리적이면서 사려 깊고, 부러 나서지 않으면서도 지역사회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고 애를 쓰는 전도유망한 사업가다.
 
그래서 서도철(황정민)과 동료들의 끈질긴 수사 과정은 오랜 간절함 끝에 뻥 뚫리는 통쾌함을 선사하는 반면, 전직 '베테랑' 형사 대호(이성민)가 자기 직감에만 의지해 공무원사칭, 주거침입을 일삼으며 애꿏은 종진의 삶을 짓밟는 이야기는 눈살만 찌푸리게 할 뿐 전혀 유쾌하지 않다(대호의 등쌀에 종진이 마을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전과자임을 고백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더 헌트>는 맞고 <보안관>은 틀리다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더 헌트>는 2012년에 나왔음에도 정확히 <보안관>을 겨냥하고 만든 영화다. 빈터베르그 감독이 담당 교수라면 <보안관>은 F학점 맞고 부모님 호출까지 따 놓은 당상이다. 이유가 궁금하면 <더 헌트>의 주인공 루카스(매즈 미켈슨)와 <보안관>의 종진을 비교하면 된다.   


유치원 선생님인 루카스는 과묵하지만 다정한 성품으로 모두에게 인기 있는 남자다. 그런데 자신의 학생인 클라라(아니카 베데르코프)가 어떤 이유엔가 거짓말을 하고 아동 성추행범으로 몰린다. 클라라는 절친의 딸이기도 하다. 항변하면 할수록 직장 동료와 친구들, 애인까지도 그를 외면하기 시작한다. 마을에서 완전히 고립된 그는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근근이 살아가고 공공장소에서 린치를 당하기에 이른다. 


<보안관>으로 돌아와서, 5년 전 마약 사건에 연루됐다가 번듯한 사업가가 되어 돌아온 종진이 "뽕쟁이"라는 근거는 영화 중반까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다만 과거에, 사정이 딱한 '초짜'라서 형기를 줄여줬건만 깍듯한 '척'만 하지 실은 건방지게 기어오르는 종진이 대호 눈 밖에 나는 과정만 반복, 고조된다. 


대호가 말하는 형사의 직감은 무시무시하게 비합리적이다. 계속된 기행으로 모두가 등을 돌린 상황에서 그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버지의 유언만 봐도 그렇다. 착하게 생긴 옆집 대머리 아저씨에게 사기를 세 번이나 당했다는 아버지는 '첫째, 사람은 안 변한다' '둘째, 대머리를 믿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는데, 놀랍게도 이것이 영화 말미에 실현된다(조진웅이 대머리였다!). 이쯤되면 <공공의 적>의 강철중은 매우 지적인 사람으로 느껴진다. 


대호가 마약 범죄라는 '악'을 소탕한답시고 저지르는 '불가피한 과정'을 정당화해주는 건 종진이 진짜 악인이었다는 '결과'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우연일 뿐이다. 아무렇게나 던진 돌멩이에 두꺼비가 맞아 죽을지 사람이 맞아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 헌트>의 루카스도 정확히 이런 방식으로 희생됐다. 


진실을 은폐하는 가림막은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속 근거가 빈약한 확신도 내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게으르지만 고집은 센 보안관 아저씨의 방해공작일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