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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Jan 29. 2018

<로우>

끔찍한데 강렬했다. 여러 번 눈을 감아 버렸는데 끝나고 나니 한 번 더 보고 싶어졌다. <렛미인>을 좋아하는데 그것의 하드코어 버전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로우>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그런데 흑과 백의 바둑돌 만큼 선명히 구별되는 두 이야기가 중첩돼 있다. 그 연결 지점이 백미다. 후반부 쉴 틈 안 주고 등장하는 구토 유발성 이미지를 납득할 수 있는 이유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 영화는 한 소녀를 망가뜨리는 무자비한 폭력(1부)과 그것이 깨운 소녀 안의 식인 욕구가 폭주(2부)하는 이야기다. 


프랑스에 사는 열여섯 살 소녀 저스틴은 생텍쥐베리 수의학교에 입학한다. 그런데 이 학교는 고질적인 ‘똥군기’가 뿌리박힌 곳이다. 프랑스 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보다 심한 인권 유린이 자행된다. 신입생 환영회 때 강제로 술을 먹이는 정도가 아니라 토끼 콩팥을 날것으로 먹인다. 4열 횡대로 줄을 세운 다음 멀쩡한 말을 죽여 뽑은 시뻘건 피를 뒤집어씌운 뒤 기념사진을 찍는다.  


저스틴은 ‘천재 소녀’로 학교에서 이미 유명하다. 각종 방탕을 종용하는 학교생활에 가뜩이나 적응이 안 되는데 교수들마저 ‘너 같은 애들이 물 흐린다’며 시기와 질투를 일삼는다. 여기까진 잔혹한 세상에 내던져진 순진한 소녀의 성장통을 다룬 영화 같다. 한편으로는 단합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일상적 파시즘의 일면을 고발하는 영화 같기도 하다. 



그런데 토끼 콩팥을 먹은 저스틴이 ‘생살의 맛’을 자각하면서 이야기가 급반전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룸메이트이자 게이인 에이드리언이 웃통을 벗고 축구하는 것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장면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성적 욕구를 느끼는 것으로 보일 텐데 그게 아니고 싱싱한 활어를 보듯 식욕을 느끼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두 가지 욕구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흥미로운 것은 폭력에 짓밟힌 순진한 소녀가 ‘더 이상은 못 참아!’라며 세상에 복수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다. 저스틴 안에는 이미 무시무시한 폭력성이 있었고 그게 일깨워진 것뿐이다. 그래서 저스틴은 주체할 수 없는 내적 변화에 신음한다. 그리고 아무리 부정해도 고개를 쳐드는 식인 욕구, 즉 '내 안에 살고 있는 나 아닌 나’를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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