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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Jun 11. 2018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 가정폭력도 무섭다, 친권 존중의 법 체계 아래서 신음하는 피해자들

가정폭력을 다룬 프랑스영화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프랑스는 결혼 따위의 고루한 습속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연애가 국력인 나라 아니었나. 그런데 이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에선 프랑스를 배경으로 '사랑과 전쟁'에나 나올 법한 싸이코 아저씨가 미저리처럼 이혼한 파트너와 자식들을 물고 늘어진다. 


단순히 물리적 폭력만 일삼는 게 아니라 2주에 한 번 돌아오는 아들과의 만남 때마다 협박과 회유를 넘나들며 어떻게든 전 파트너에게 접근하려고 떼를 쓴다. 10살이나 됐을 아들은 상황 돌아가는 꼴을 알면서도 극심한 공포에 휩싸인 나머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류의 호러영화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끔찍한 스토리와 달리 분위기나 전개는 상당히 정적으로 흘러간다. 감정을 부러 고조하려는 음악도 거의 없고 인물의 말소리와 이따금 내뱉는 숨소리, 그리고 적막에 싸인 현장음만으로 흘러가는 영화다. 그런데 불필요한 사운드를 최소한 줄인 연출이 현실감과 공포감을 더욱 부각했다는 생각이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양육권 분쟁과 관련한 법적 제도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첫 장면에서 판사를 마주하고 변호사를 대동한 두 파트너는 각각 남자의 폭력 사실을 증명하려 하고, 자식을 너무나 보고 싶은 아빠임을 증명하려 한다. 이 재판은 남자의 손을 들어주고 이것이 종국에 엄청난 비극으로 발아하는 씨앗이 된다. 친권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친권 위주의 제도 아래선 가정폭력마저도 부모의 훈육의 일부로 묵인하는 법의 사각지대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영화는 (가정폭력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러한 공고한 법체계가 오히려 사회 안전망에 구멍을 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피해자에겐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덫으로 옭아맬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사회고발 영화로 보인다. 요컨대 이 영화는 모든 법엔 한계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단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니 괜찮다는 인식에서 그치지 말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다른 수단도 고민해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준다.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에서 관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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