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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Dec 29. 2020

관광객의 철학_아즈마 히로키

코로나 시대에 관광으로 철학하기

한 줄 정리


코로나 시대에 관광이라니 무슨 현실 감각 떨어지는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한번쯤 들어두면 요긴히 써먹을 이야기. 관광은 무분별한 소비문화라는 비난을 받지만 오히려 세계의 갈등을 해결할 씨앗일 수 있다는 신선한 주장이다. 저자는 내셔널리즘과 글로벌리즘이 동시에 득세하는 ‘2층 구조’에서 일어나는 우발적 테러리즘 등의 사건은 정치적 의도가 모호한, 정치 밖의 정치이므로 기존의 국가론적 접근으론 해석할 수 없으며 이것이 개인이 욕망에 충실한 채로 보편과 연결될 수 있는 경계의 문화인 관광을 사유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외적인 면


'관광'이라는 소재가 한눈에 도발적으로 다가온다. 여행 실용 분야면 몰라도 인문 철학 분야에서 다루기에 생경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리다의 오배 개념, 발터 벤야민의 파사주와 산책자 개념 등을 응용한 아즈마의 관광은 낯선 접근이 주는 충격 효과를 이용하면서도 대가들의 사상에서 탄탄한 근거를 마련한 영리한 철학적 시도다.



내적인 면


입문서 같은 제목, 알록달록한 꿈속 같은 표지가 주는 인상과 달리 정통 철학서다. 후기구조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를 전공한 저자는 근대 철학자 볼테르, 칸트, 헤겔, 슈미트, 코제브, 아렌트, 노직, 네그리, 하트를 넘나들며 자신의 논증을 전개한다. 복잡한 현대 철학의 흐름을 정리하며 이를 바탕으로 그가 발명한 관광 개념의 이론적 정합성을 쌓아 올린다. 2010년대 후반 세계의 혼란을 해석하는 대중 친화적인 문체는 현대 철학에 관심이 없던 이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건질 수 있는 흥미로운 생각 재료다.



주관적 감상 


1

관광은 저급한 소비 문화의 결정체일까? 동의하든 아니든 우리는 소비하는 관광객보다는 주체적인 여행자가 되길 원한다. 관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이처럼 저평가된 관광이 2010년대 후반 세계의 핵심적 문제(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영국의 브렉시트 등의 내셔널리즘, 글로벌리즘의 여러 가지 폐해)를 해결할 미지의 인문 영역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즈마 히로키는 포스트모던 철학을 기반으로 게임, 애니메이션, 등의 서브컬처를 읽어낸 시도로 국내에서도 유명해진 현대 일본의 대표적 비평가다. 국내에서 출간된 대표작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문학동네, 2007), <존재론적, 우편적>(2015, 도서출판b) 등이 있다. 이 책은 아즈마가 지난 20년의 작업을 결산하는 본격 철학서로서 현시대에 대한 아즈마의 실천적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요약서다.


2

20세기 후반 인문 사상은 타자에 대한 관용을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브렉시트, 테러리즘, 난민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면 세계는 적극적으로 타자를 거부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비판은 탁상공론이 됐다. 아즈마는 이 같은 세계 정치의 문제를 기존의 헤겔의 변증법적(국가론적) 패러다임 속 정치 정의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개인-시민-국민-세계 시민으로 향하는 헤겔의 단선적인 정치=인간의 성숙이나 경제=동물의 발전 이외에 둘을 아우를 또 다른 회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3

그가 제안하는 건 관광이라는 인문 개념의 발명이다. 관광객은 외교관(정치의 화신)이 아니다. 개인의 이기심과 상업정신(소비 욕망)에 충실한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국가 간 갈등 상황에서도 서로의 경제를 지탱하는 국가 존립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아즈마는 “사적인 삶을 그대로 공적인 정치에 접속하는” 관광객이 개인을 보편성에 연결하는 또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4

관광객은 내셔널리즘과 글로벌리즘으로 이중화된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우편적 다중’이다. 이는 곧 무수한 실패의 가능성이다. 우편은 ‘오배’, 즉 잘못 배송되는 실패의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라는 관광의 본질에서 벗어난, 무수한 실패는 새로운 소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실패들은 어린 아이를 만나는 것 같은 낯선 경험이지만 뜻밖의 가족 유사성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정치적이지 않은 관광은 오히려 분열된 세계를 통합하는 역할을 하는 의외의 존재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밑줄 그은 문장


관광객은 방문한 곳을 산책자처럼 들뜬 마음으로 돌아다닌다. 그리고 세계의 모습을 우연적 시선으로 파악한다……때로는 방문한 곳의 주민이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p. 38)


성숙한 시민이 성숙한 국가를 만들고 성숙한 국가가 성숙한 국제 질서를 만든다는 역사관을 채용하는 한 국제 사회는 미성숙한 존재를 배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배제당한 미성숙은 테러라는 유령처럼 계속해서 회귀하는 것이다. (p. 82)


관광객은 대중이다. 노동자이자 소비자다. 관광객은 사적인 존재고 공적인 역할을 맡고 있지 않다. 관광객은 익명적 존재며 방문한 곳의 주민과 토론하지 않는다. 방문한 곳의 역사에도 정치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관광객은 단지 돈을 쓸 뿐이다. 그리고 국경을 무시하며 지구상을 넘나든다. 친구도 적도 만들지 않는다. (pp. 1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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