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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Sep 29. 2015

<셔틀콕>

첫사랑은 셔틀콕을 닮았다

배드민턴은 가장 대중적인 생활체육 중 하나지만, 사실 아무 데서나 편하게 즐기기에 좋은 운동은 아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전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셔틀콕 때문이다. 뭉툭한 '화살'을 닮은 이 물체는 라켓의 타격에 잽싼 몸놀림으로 반응하는 동시에 바람에 쉽게 방향을 잃을 만큼 가볍기도 하다. 이런 셔틀콕이 첫사랑과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첫사랑에 빠진 주인공 민재(이주승)는 배드민턴으로 치면 재능이라고는 없거니와 바람도 잘못 만났다. 무엇보다도 연습할 상대가 없다. 재혼한 아버지는 새엄마와 함께 교통 사고로 죽었다. 재혼으로 생긴 누나 은주(공예지)가 유산을 들고 도망간 마당에 피 한 방울 안 섞인 동생 은호(김태용)를 책임져야 한다. 은호는 어딘가 관능적인 은주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애인이 있다. 별 뜻 없는 은주의 언행에도 이미 혼자 경기를 시작한 민재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은주는 민재의 스윙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부모를 잃은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첫사랑의 실패로 누나와 돈까지 잃고, 민재는 라켓을 부러뜨렸다. 공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묻어버렸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도망간 은주를 찾는 일이다. 은주에게는 돈이 있다. 그보다 그녀가 던진 셔틀콕을 힘껏 쳐낸 민재를 두고 도망친 혐의가 있다.


"말 한 건 있고, 말 안 한 건 없는 거야?’"


우여곡절 끝에 은주를 찾아낸 민재는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은주를 노려보는 그의 눈은 위협적이기 보다는 절박하다. 그러나  생애 첫 헛스윙 후에, 그에게 밀려든 당혹스러움을 보아주는 사람도  조언을 해줄 사람도 없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상처라고 불러도 될는지 말해주는 사람도 없다. 


어떤 소통도 거부하는 민재가 가져오는 긴장은, 그래서 더욱 팽팽하고 날카롭다. 오로지 홀로 모든 감정을 스스로 명명하고 소화하다 실패한 10대가 위태롭게 비틀댄다. 벼랑이 코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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