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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Aug 08. 2021

우체국+여자들_찰스 부코스키

HOW TO READ Charles Bukowski

1. 문학사에 대체 못 할 족적을 남긴 유니크한 작가에게 으레 그렇듯 사랑받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찰스 부코스키에게도 민망할 만큼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미국 하류 인생의 계관시인’(타임) ‘유럽과 미국 양쪽에서 숭배 대상이 된 시인’(인디펜던트) 같은 것들. 부코스키는 미국 주류 문단의 허점을 찔렀고 역설적으로 그 구멍을 채워준 이단아 캐릭터로서 독창적인 아우라를 구축했다. 다른 잘나가는 작가에겐 눈도 깜빡 않는 시크한 명사들이 앞다퉈 그를 떠받들고 치켜세운다. 그런데 이렇듯 너도나도 자신 있게 진심으로 칭송할 수 있는 작가라는 점에서 그의 명성이 단순히 문학적 성취만으로 이뤄진 건 아니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부코스키의 작가적 정체성과 실제 인생 사이의 구분선은 희미한 걸 넘어 없다시피 하다. 부랑자 내지는 무뢰한이라 할 만한 그의 방탕한 생활은 작품의 안과 바깥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실시간으로 연동되는 클라우드 서비스처럼 말이다. 순도 99%의 논/픽션적 리얼리티는 ‘어디까지가 경험인가요?’라는 순진한 질문을 애초에 던질 수 없게 한다. 대다수 작가가 작품 뒤에 자신을 숨기는 것과 대조적으로 자기 삶에 대한 세간의 호기심을 문학의 원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솔직함. 하지만 담대함보다는 자포자기에 가까운 냉소적인 자아. 한없이 염세적인 그의 글에서, 그러나 펄떡이는 생동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이렇듯 ‘날 것’, 한 인간의 껍질 아래 ‘속살’을 보고 있다는 의심을 호기롭게 허락하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2. 그렇다면 부코스키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잘 알려진 대로 그는 평생을 술독에 빠져 허우적댔고 경마와 여성편력으로 일상의 대부분을 채웠다. 그럼에도 밤이면 어김없이 타자기 앞에—당연히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술잔을 벗 삼아—앉았고 왕성한 창작력으로 서른세 권의 시집, 여섯 권의 장편소설을 포함해 육십여 권의 책을 펴냈다. 흑과 백의 간극만큼 먼 이러한 모순적인 삶에서 미국인을 포함한 세계인은 처치 곤란한 자신의 치부를 발견하고 열광했다. 20대 중반에 첫 단편소설을 발표했으나 커리어를 이어가지 못하다가 50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한 부코스키는 작가로 성공한 뒤에도 이전과 별다를 것 없는 개차반의 삶을 계속했다. 문학은 그의 삶을 구원할 리 없었고 이를 통해 독자는 구원의 허위성을 조금은 더 담담히 받아들이게 됐다.


3. 유튜브에는 부코스키의 대표 시들을 뮤비 형식으로 영상화한 조회 수 수백만의 영상이 떠돈다. 구와 신의 기막힌 콜라보에 깊이 감화된 나는 도서관에서 그의 첫 장편소설 <우체국>(1971)과 세 번째 장편 <여자들>(1978)을 집어 들었다. 일용직 노동자로 전전하다 우체국 임시 집배원으로 12년을 일했던 경험을 헨리 치나스키라는 분신에 고스란히 담은 작품이 <우체국>이다. 매일 숙취에 허덕이는 치나스키는 지각과 결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우편 배달 중 스쳐간 모든 사람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과 혐오를 멈추지 않는다. 약간의 건덕지라도 생기면 어떤 여성이든 물불 안 가리고 성적 흥분을 표출한 뒤 배척되기를 반복하는 지지부진한 삶이 나열된다.


스토리라 부르기도 민망한 일상의 편린들이 그럼에도 술술 읽히고 책을 덮을 수 없게 하는 건,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쇼비니스트라 칭하기도 민망한 그의 음흉하고 폐쇄적인 내면의 변주를 따라가게 하는 건 그의 정념을 예술로 승화하는 단단하고도 함축적인 단문의 힘 덕분이다. 과연 나는 부코스키와 얼마나 다른가. 불행과 어둠을 가감 없이 인정하고 드러내는 그가 오히려 낫진 않은가. 전업작가로 변신한 뒤의 삶을 그리는 <여자들>은 한술 더 뜬다. 그의 작품과 명성에 빠져든 수많은 여성과의 잠자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전념하는 치나스키/부코스키는 결국 자신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인간의 끝, 사회의 끝, 끝의 끄트머리 벼랑에서 비틀대며 외줄을 타는 부코스키의 문학적 자의식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지만 충분히 처절하다.


#찰스부코스키 #우체국 #여자들 #열린책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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