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영 Feb 18. 2022

면도기 시장에 아직도 먹을 게 남았다고?

면도 용품 구독 서비스, 와이즐리(WISELY)

<과연 브랜드일까?> 시리즈는 한 명의 고객이자 사용자로서,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바라본,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을 담고 있는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면도기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고 생각했다. '도루코, 질레트 같은 대기업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이 시장에 진입해서 파이를 나눠먹을 수 있겠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다 와이즐리(WISELY)라는 브랜드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좋은 면도날, 꼭 비싸야 할까요?'라는 파격적인 메시지를 들고 나에게 찾아왔다.


'그러게... 면도날을 3,4만원씩 주고 사는 걸 왜 이렇게 당연하게 생각해왔지?'


무언가에 홀린 듯 그들의 광고를 클릭했고, 실제로도 저렴한 면도날 가격에 놀라, 그리고 때마침 면도날을 갈아야 할 시기였었기에, 주저 않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며칠 뒤 택배가 도착했다. 아무 생각 없이 테이핑을 벗겨내고 그들의 패키지 박스를 여는 순간, 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무슨 면도기 패키징이 이래?' 길게 말하지 않고 아래 사진으로 대체하겠다. 여러분들도 한 번 느껴보시길 바란다.

와이즐리의 세심함이 느껴지는 패키징과 문구들


와이즐리, 과연 브랜드일까?


면도기야말로 기능에 충실한 제품이다. 사람들은 절삭력과 밀착력이 더 좋은 제품을 찾아 정처 없이 떠난다. 그것이 도루코 면도기든, 질레트 면도기든 상관없다. 그저 나에게 더 맞는 제품을 찾을 뿐이다.


그래서 면도기, 칫솔, 치약과 같은 생활용품들을 브랜딩 하는 건 더욱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어떤 기업의 칫솔과 치약으로 양치를 하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난 '입 안을 깨끗이 한다'라는 목표만 달성하면 그만이다. 면도기도 크게 다를 건 없다. 그저 '깔끔하고 상처 없이 면도를 한다'라는 목표만 달성하면 그걸로 끝이다.


와이즐리는 먼저 '저렴한 가격'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내세웠다. 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선 아마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가격 측면에서조차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면, 사람들에게 눈길조차 받지 못했을 거라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와이즐리는 '건강하고 현명한 생활습관'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그들은 문제점을 발견했다. 하나의 기업이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며 발생하는 가격 거품,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 비싼 면도날을 자주 갈지 않는다는 문제점 말이다.


그렇다 해도 오래된 면도날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건 분명 '건강하지 않고 현명하지 않은 생활습관'이다. 하지만 와이즐리는 그걸 고객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대신 대안을 제시하며, 이제부턴 '건강하고 현명한 생활습관'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굳이 면도날 바꾸는 주기를 체크할 필요가 없게, 그들은 정기 배송이라는 구독 서비스를 도입했다. 참 세심하다.)


제품 패키징 곳곳에는, 면도 후 트러블에 대한 고객의 심정을 대변하는 문구들로 가득 차있었다. 화려하기만 한 패키징보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렇게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제품이 더 큰 감동을 전달하는 듯하다. 


++물론 질레트나 도루코 면도날의 성능엔 못 미친다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게 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이 와이즐리의 면도날을 쓸 것이다. 연예인 광고만 내세우는 기업보다, 이렇게 고객의 Pain Point를 세심하게 캐치하는 브랜드에 돈을 쓰고 싶다.


++++그들은 계속해서 단점을 보완하며, 업그레이드된 제품 라인을 선보이고 있다. 아직은 스타트업이지만, 앞으로의 횡보가 기대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랜드 안에 브랜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