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호
나무들은 가지처럼 말랐어
립스틱은 입술처럼 빨갛고
나다워진다는 건
추악해지는 거야
희미해지고 싶은 건
당연한 거지
껍질을 벗으면
카멜레온처럼 변장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
착시처럼 도마뱀들은
서로의 꼬리를 물어
뙤약볕 아래 지져가는 건
여름일까 노을일까
세월을 기억하는 건
뇌가 아닌 근육일지도
우연을 넘어선 다행이라도
나답지 않게 뜨거워
여름은 찌고 겨울은 빠야
도시에서 여름은 항상 겨울을 이겨
아스팔트 까맣고 눅진하게
탄 호떡처럼 녹아가
그래서 겨울도 여름이야
정글은 쭉 뻗은 인공숲이고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우린 서로 알았던 거야
사랑한다는 것 이상이지 안다는 것은
안다는 것을 아는 건 헤어진 다음이라는 것
나다워진다는 것
너로 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건
백만분의 일 숫자분의 일 이상의 행운
일찍 알수는 없지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 점 안의 점처럼
낭만적이지
우주는 낭만적이야
현실은 낭만적이지
초록은 암녹색 속살
햇살 사이로 벗어내고
해바라기는 여름을 바라보고
익어가고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고
심장은 너무 빨리 뛰고
숨은 잘 쉬어지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