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도연호

by 도연호

나는 나를 드러내는 것을 무서워했다 나는 상상 속의 나보다 무척이나 초라하고 작았다 남이 내 속의 나를 보는 것 같을 때,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무섭게 쏘아댔다 무서워서였지만 어리석었다 몰랐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더욱 그랬다 후회했다 내 속의 나를 꺼낸 사람들은 대개 돌아오지 않았다 혼자인 시간을 먹어대며 상상 속의 나는 점점 비대해졌다 나를 무섭게 을러댔다 나는 언 손을 호호 불었다 이불 속이었는데도 추웠다


서커스가 곧 시작됩니다 관객 분들은 착석 부탁드립니다

난쟁이가 달려와 분칠을 한 얼굴로 장송곡을 불렀다

곡예사는 줄 위에서 저글링을 하며 기괴한 춤을 추었다

서커스는 막을 내립니다 조롱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상상 속의 나는 관객들과 힘차게 박수를 쳐댔다

나는 너를 찾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뱉었다

봄이 겨울을 고이 덮어주던 어느 저녁에 너를 만났지 너는 나보다 작거나 크다고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 너와 함께일 때 나는 상상 속의 나보다 더 작았지만 더 진짜 같았지 우리는 무채색이었던 서로를 함께 색칠해 주었으니까

나는 곡예사 속의 곡예사와 눈을 마주쳤다


너가 내 배를 마구 휘저어서

나는 무대 밑에

한 움큼의 나를 토해낼 수 밖에 없었다


관객 분, 괜찮으세요

곡예사도 안다


괜찮다고 대답한다


곡예사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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