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관심 분야가 다르다.
스포츠, 드라마, 예능, 애니메이션 등 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도 제각각이다.
그 다름이 사람에게 호기심을 갖게 하고, 그 다름이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정치외교학과 출신의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매일 쏟아지는 뉴스에 촉각을 세우고 정치 경제와 미래를 예측하는 걸 즐겼다.
그런 그에게 연인이 생긴 건 최근 일이었다. 그 전만 해도 연애는 아직이라며 손사래를 쳤던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뭐하는 사람이니?"
"연예기획사에서 홍보팀에서 일해요."
"남자 친구는 국회의원, 여자 친구는 연예인을 관리하는 거네. 재미있다."
"저하고는 많이 다른 사람이에요. 그래서 더 끌렸던 것 같아요."
"똑같으면 재미없으니까. 만나면 무슨 얘기해?"
"그 친구는 연예 이야기, 전 정치 이야기하죠."
그가 연예인들이며 예능, 드라마 티비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상상이 가질 않았다. 보통은 남자들도 인기 있는 드라마와 걸그룹 등을 종종 이야기한다.
그는 포털 화면에서 연예와 스포츠에 클릭하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했다. 오로지 정치 경제 이야기만을 했고, 그것이 화제가 될 때만이 눈이 빛났다. 그런 그가 정치 경제와는 전혀 무관한 여자와 사귀고 있는 게 신기했다.
역시 사랑하면 사람이 바뀌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이제 도저히 들어줄 수 없어요!"
몇 달 만에 찾아온 그의 첫마디였다.
"왜 뭘 더 들어줄 수 없다는 거야?"
"티비 드라마와 예능 방송 이야기가 이제는 진저리가 나요. 그걸 같이 보는 건 더 끔찍하고요."
"그 사람은 어때? 네 이야기 잘 들어줘?"
"제 이야기야 잘 듣죠. 그런데 제가 더 이상 못 듣겠어요."
"왜 못 들어. 그 사람은 잘 들어준다며."
"수준 떨어져서 못 듣겠어요."
"수준?"
"수준이 너무 낮아요."
"너는 수준이 높은 이야기를 하니?"
"제가 하는 이야기가 수준이 높다라는 건 아니에요!"
"그럼 무슨 말이야?"
"최소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이잖아요. 제가 하는 말들은.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 친구는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만 해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잖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이해해. 그런데 네가 하는 말과 생각은 그렇게 쓸모가 있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잖아요. 정치, 경제, 외교가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거니까!"
"그럼 드라마와 노래는 사람 사는 데 아무런 쓸모가 없니?"
"완전 쓰레기란 소리는 아니에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죠!!"
"뭐가 중요하고, 뭐가 안 중요하니? 그걸 누가 정하니?"
"그래도 정치랑 드라마는 수준이 다른 거죠."
"수준이 다른 게 아니라 본질이 다른 거지. 정치가 세상을 변하게 만든다고 했지. 드라마와 노래 한곡도 사람 마음을 위로하고 감동을 줘."
"그런 거랑 틀린 거 잖아요."
"넌 그저 네가 수준 낮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을 뿐이잖아. 정치가와 연예인은 근본적으로 수준이 다르다고 선을 긋고."
"맞아요. 제가 듣고 싶지 않은 건 맞아요."
"세상에 뭐 대단한 일이 있니? 어떻게 보면 다 쓸데없는 일이고, 어떻게 보면 다 중요한 일이잖아."
"계속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싫었어요. 질려버렸어요."
"질렸구나. 질려 버렸어."
그 뒤로 그에게 다시 연락이 왔을 땐 그는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있었다.
"정치부 기자예요. 처음엔 정보를 캐려고 접근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제가 마음에 들었대요."
"정치부 기자라면 말은 잘 통하겠다."
"통하다마다요. 지겨울 정도죠. 선배 말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무슨 말?"
"세상에 대단한 일이 없다!"
"대단한 일도 있긴 하지."
"뭐요?"
"사랑하는 일."
"아무튼 그 친구와는 도저히 다시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사람이 완벽하진 못하잖아요."
"완벽할 순 없지!"
"이 친구와는 잘 해 보려고요. 전처럼 수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요."
"그래. 만약 다시 그런 생각이 들거든, 이렇게 생각해봐. 지금 이게 내 수준이다,라고."
"그럼, 지금 이게 제 수준이네요."
"응, 그게 네 수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