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미닉 Aug 17. 2017

연애상담일기 - 순결한 남자친구





그녀는 5년 동안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어릴 때부터 정의로운 판사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꿈을 위해 법대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했었다.


5번의 낙방과 사법고시 폐지 기사를 보고 그녀는 판사의 꿈을 접었다.

그 뒤로 그녀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어떻게 지내?"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었어요."


"계속 공부만 하려니까 힘들지?"


"아니요. 괜찮아요. 공부가 체질인 걸요. 이제 합격만 하면 되는데 그게 힘드네요."


"이번에 꼭 합격할 거야."


"합격해야죠. 시험도 얼마 안 남았어요."


"그럼 시험 준비만 해도 바쁠 텐데 무슨 일이야?"


"실은 상담할 게 있어서요."


"연애 상담하러 온 거야?"


"맞아요. 연애 상담하러 왔어요. 예전에 한 번 보셨죠. 제 남자 친구."


"작곡가 남자 친구. 하루 종일 녹음실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던."


"맞아요. 그 작곡가 남자 친구요. 요즘도 작곡하는데 푹 빠져 살아요."


"그렇구나. 오래된 기억인데. 너희도 오래됐지. 사귄 지."


"6년 째에요."


"남자 친구가 시험 준비하는 동안 계속 기다려 줬구나."


"맞아요.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계속 한결같이 기다려주고 배려해 줬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


"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럼 문제 될 건 없지 않니?"


"문제가 없는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긴 거야?"


"스킨십이 없어요. 저희 커플."


"설마 6년 동안 스킨십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거야?"


"거의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엔 저도 그게 편했어요. 스킨십을 안 해도 상관없었어요."


"아마도 네가 시험을 준비하느라고 더 그랬을 거야."


"맞아요. 저도 그렇게 여겼어요. 이게 다 그 빌어먹을 시험 때문이라고! 이제는 더 이상 그 시험을 준비하지 않잖아요. 그제야 보이더라고요. 우리 관계가가 보통 커플 하고 다르다는 것이..."


"남자 친구에게는 말해봤니?"


"말하지 않고 덮쳤어요!"


"덮쳐?"


"제가 남자 친구를 덮쳤는데... 글쎄... 하지 말라면서 저를 밀어내더라고요."


"저런 자존심 상했겠다."


"저를 쏘아보는데 부끄럽고 화가 나서 말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나왔어요. 도망쳤죠."


"그게 언제니?"


"어제요..."


"그랬구나. 힘들었겠구나."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어디에 하소연할 때도 없어서 찾아오게 됐어요."


"잘했어. 잘 왔어. 그 남자 친구한테 연락 온 건 없었어?"


"문자가 왔었어요.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그 친구 강박증이 심하구나. 여자의 마음도 몰라주고."


"제가 너무 바보 같죠?"


"바보라니... 그런 말 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헤어지렴."


"그렇게 쉽게요?"


"시간이 지나면 더 어려워져. 지금이 좋은 때인 것 같아."


"그래도 그동안 절 기다려준 고마운 사람인데요?"


"결혼이 뭐 별거니. 그걸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건 문제가 있는 거야. 그래서 그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거고."


"변할 수도 있잖아요?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변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해. 그런 기대로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좋을 거 같아."


"그게 쉽게 될까요?"


"어렵지. 좋았던 시간, 함께한 추억들... 기억을 쉽게 지울 수 없지. 그런데 인생을 길게 보면 지금 그렇게 하는 게 나중을 위해 잘한 선택이란 걸 알게 될 거야."


"그러게요. 지금까지는 당장 눈 앞에 있는 시험에만 쫓겨서 인생을 길게 볼 여유는 없었어요."


"길게 보고 사람도 많이 겪어봐야 해. 시장에서 물건 하나를 사려해도 꼼꼼히 보는 것처럼."


"잘 못 만날 수도 있잖아요? 좋은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쉽지 않지. 그러니까 노력하는 거지. 힘들어서 슬퍼하는 것보다 나아."


"네. 쉽진 않겠지만 노력해 볼게요."


"당장은 공무원 시험 준비하던 것에 집중하고 일을 찾고 안정된 생활을 하다 보면 애인은 저절로 생길 거야."


"소개시켜주세요!"


"그래. 당장 소개시켜줄게! 그러고 힘들어하지 말고 그 사람은 잊도록 해."


"... 네..." 


매거진의 이전글 연애상담일기 - 커플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