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도미닉 Aug 19. 2017

연애상담일기 -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여자친구






여름이면 극장에선 어김없이 공포영화가 상영된다. 장르영화 중에서 공포영화만큼 호불호가 명확한 것도 없을 것이다. 오래간만에 극장에서 시원한 기분을 만끽하려는 이들과 공포라는 단어에 얼씬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개인적으로 두 부류 다 이해가 간다.


타인의 취향일 뿐이니까...


취향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커플이 되면 상황이 좀 난감해진다. 공포라는 말에도 기겁을 하던 그가 겁에 질려 나타났다.



"무서워요."


"무슨 일이야?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픈 사람처럼..."


"여자 친구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왜 여자 친구가 못살게 해?"


"더 이상 못 버틸 거 같아요."


"심각한 상황이야?"


"미칠 지경이에요."


"얼굴이 너무 창백하다. 몸도 계속 떨고..."


"차근차근 말씀드릴게요. 실은 여자 친구가 호러영화 마니아예요."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여자 친구!"


"네 맞아요. 공포영화라고 하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요. 전 이해할 순 없지만요."


"넌 공포영화 안 보지?"


"공포영화 안 보는 게 아니라 못 봐요. 어릴 때 멋도 모르고 귀신의 집에 들어간 게 지금도 트라우마도 남아 있는 걸요."


"그런데 여자 친구가 공포 영화광이라... 난감하겠구나."


"여자 친구에겐 아직 말도 못 했어요. 소개팅 자리에서 공포영화를 좋아한다길래 저도 모르게 취향이 같다도 말해버렸어요."


"솔직하게 말하지 그랬어?"


"잘 보이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여자 친구가 그렇게 공포영화를 밥먹듯이 보는 사람인 줄 몰랐어요."


"그런데 얼굴은 왜 그래, 환자처럼 너무 창백하잖아!"


"최근 여자 친구랑 데이트할 때마다 공포영화를 봤어요. 그 뒤로 계속 잠을 제대로 잔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얼마 동안 그런 거야?"


"벌써 삼주가 넘어가는 것 같아요. 잠이 들려하면 오싹한 기분과 함께 깨버려요. 영화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박혀서 나오질 않아요. 무서워서 잠을 잘 수 없어요."


"병원은 가 봤어?"


"수면제를 받아왔어요. 의사는 절대 공포영화를 보지 말라고 했고요."


"다른 조언은 없었고?"


"그게 다 였어요. 이젠 어떻게 하면 될까요?"


"만난 지 얼마나 됐니?"


"이제 100일이 넘었어요."


"그 친구랑 계속 잘 해 보고 싶니?"


"공포영화를 너무 자주 보는 것만 빼면 아무 문제도 없어요."


"그럼 간단하네. 그 친구에게 공포영화 대신에 다른 장르의 영화를 보자고 말하면 되겠어."


"그렇지만 그럼 제가 거짓말한 게 들통나잖아요."


"소개팅 자리에서 잘 보이려고 그럴 수 있는 거잖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자신이 없어요. 남자가 공포영화 한 편도 못 본다는 게..."


"남자 체면 때문에 말을 못 하는 거구나."


"제가 항상 지켜주겠다고 말했거든요. 무슨 일이 있어도 옆에 있어 주겠다고, 그런데 그깟 공포영화도 못 본다는 게 부끄러워요. 좀 초라해지는 기분까지 들고요."


"그래도 방법이 있지."


"무서운 건 듣기도 싫고 보고 싶지도 않데요. 방법이 있다고요?"


"혹시, 여자 친구에겐 물어봤어? 공포영화가 왜 재미있는지?"


"네."


"여자 친구는 뭐라고 말해?"


"공포영화를 보면 살아있는 느낌이 든데요."


"넌 놀이동산의 기구들 좋아하니?"


"아니요. 그런 걸 왜 타요? 위험하잖아요."


"여자 친구처럼 스릴을 좋아하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살아있는 기분이 좋은 사람들이 있어. 그런 사람들이 이상하니?"


"이상하진 않지만 이해하긴 힘들어요. 다른 것도 얼마든지 있잖아요."


"맞아 다른 것도 얼마든지 있어. 공포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상상해봐. 만약에 네가 탄 비행기가 바다에서 불시착한다면... 집에 불이 나거나 물에 잠긴다면..."


"그건 너무 억지잖아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잖아요."


"맞아.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지. 공포영화는 사람이 만들어 낸 허구야. 진짜 무서운 건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거지. 여자 친구는 그저 공포영화를 오락으로 즐기는 것뿐이잖아. 넌 그걸 받아들이기 힘든 거고. 먼저 여자 친구를 이해해야만 해. 그러지 않고는 솔직하게 말을 한다 해도 소용없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제가 공표영화를 잘 보게 될 거 같지는 않아요."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다음은 훨씬 쉬워. 이제 고백해. 나는 겁쟁이 었다고. 공포영화 한 편도 못 보는 겁쟁이라고."


"... 겁쟁이라고요..."


"당신과 사귀고 싶어서 거짓말했노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이제 그만 만나자고 하면 어떡하죠? 저에게 실망하진 않을까요?"


"그럼 헤어져야지."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은 공포영화도 헤어지는 일도 아니야.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일이야. 감정이 메말라 버리는 거지. 여자 친구에게 진심을 다 해 말했는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만 헤어져도 돼. 대신에 마음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는 게 중요하고. 그만큼 그 사람에게 진심이라는 뜻이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솔직하게 이야기해 볼게요."


"무서운 건 네 말처럼 보지도 듣지도 않으면 돼.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좋아하는 것만 맞출 순 없어. 같이 좋아야지."


"용기 내서 말해 볼게요."


"그 용기가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것도 이겨내게 할 거야!"


도미닉 소속 직업상담사
구독자 542
매거진의 이전글 연애상담일기 - 순결한 남자친구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