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림한 체형의 여자들조차도 자신을 뚱뚱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티브이 속에 등장하는 연예인의 몸매를 평균이라고 여기고, 그들의 몸매와 자신을 저울질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티브이와 인터넷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외모가 비교의 기준이 돼 버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은 더 확고해진다.
뚱뚱한 건 나쁘다.
멋진 몸매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겨나는 순간 우리는 불행해진다.
행복한 줄로만 알았던 그녀가 수줍은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봉사활동 중에 알게 된 동생으로 성격이 온순하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웃는 인상이라 얼굴만 봐도 기분 좋아지는 맑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상담을 요청했고, 평소와 다르게 불안해 보였다.
"봉사할 때 말고 얼굴 보는 게 처음이에요."
"그러게. 그런데 무슨 일이야? 얼굴이 안 좋아 보여."
"문제가 생겼어요."
"무슨 문제?"
"제가 어떻게 보여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저 뚱뚱해 보여요?"
"아니. 뚱뚱하긴. 보기 좋아."
"거짓말인 거 알아요. 제 키가 163cm예요."
"난 더 큰 줄 알았어."
"살 때문에 더 커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이건 말하기 부끄럽지만, 몸무게는 70kg이에요. 163에 70가 제 몸을 나타내는 숫자예요. 우습죠?"
"우습다니... 왜 그런 말을."
"실은 이제 회사를 못 나갈 거 같아요."
"회사는 왜 그만두는 거야?"
"저번 주에 고백했어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게 처음이었는데..."
"그 사람이 네 마음을 안 받아줬어?"
"거절할 것도 대비한다고 했는데...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왜 그놈이 뭐라고 했는데!"
"자기관리 못하는 사람하고는 사귈 마음이 없대요. 거울도 안 보고 다니냐고..."
"나쁜 놈이네. 그런 사람하고는 잘 안 된 게 차라리 잘 된 일이야. 세상에 널린 게 남자야. 걱정하지 말고. 그것 때문이라면 회사도 그만두지 말고. 더 당당하게 다녀야지. 보란듯이!"
"이미 회사 사람들이 다 알아 버렸어요. 뒤에서 수군거리는 게 다 들릴 정도고요. 회사가 지옥으로 변했어요."
"정말 못 된 사람이구나. 왜 그런 사람을 좋아해서..."
"그러게요. 그 사람과 연애가 하고 싶었나 봐요."
"넌 실력 있는 디자이너잖아.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고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어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못 됐니."
"그냥 뚱뚱하단 이유로 괴롭혔어요. 전 그게 너무 싫었는데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더 먹게 되고. 살을 뺄 수가 없었어요. 바보 같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 사람들이 나쁜 거야."
"봉사활동에 나갔던 것도 다이어트도 하고 힘을 내기 위해서였어요. 나보다 힘든 사람들을 보며 마음의 안식을 얻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 잘 한 거야. 잘했어. 너를 괴롭히고 말을 함부로 한 사람들이 나쁜 거야. 넌 아무 잘못 없어."
"아니에요. 잘못이에요. 그 사람 말처럼 거울 보면서도 제대로 살을 빼지 못한 제 잘못이에요. 요즘 같은 세상에 이 꼴로 다니는 게 이상한 거죠!"
"뚱뚱한 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게 잘못된 거야. 뚱뚱한 건 나쁘다고 말하면 좋을 사람들이 누구겠어? 다이어트 식품을 팔고 몸매를 교정하고 성형하는 곳에서 만들어 낸 상술이야."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세상이 변하지 않아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네가 변하면 되지."
"맞아요. 내가 변하면 되는 건데 다이어트를 할 때마다 실패했어요. 정신력도 부족하고 난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그런 생각은 하지마. 그리고 다이어트 좀 실패하면 안 되니?"
"그래서 이 모양이잖아요."
"영어공부를 마음먹는다고 모두 다 네이티브가 되는 건 아니잖아. 술 담배 끊는다고 해 놓고 삼일도 못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잖아. 원래 그런 거잖아. 모두가 그렇게 실패하잖아. 다이어트도 실패할 수 있는 거잖아."
"모르겠어요. 이런 제 자신이 싫어요."
"그럼 내가 좋은 다이어트법 하나 알려 줄까?"
"뭔데요?"
"여행다이어트!"
"그게 뭐예요?"
"너 해외여행 다녀온 적 없다고 했지?"
"없어요. 한 번도. 비행기가 무서워요."
"퇴직금까지 다 털어서 여행을 떠나보는 거야. 세계여행 티켓을 끊어서."
"저 혼자서요? 해외여행도 한 번 안 다녀 봤는데... 세계여행 티켓을 끊으라고요?"
"맞아. 혼자서 세계여행을 떠나는 거야."
"왜요?"
"홀로 낯선 곳에 가면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거든. 움직임은 평소의 열 배는 늘 거고. 음식이 안 맞는 경우도 생길 거고. 잠도 편하지 않겠지. 이 만한 다이어트법도 세상에 없을걸!"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진심이야.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여행만 한 것도 없으니까.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잖아."
그녀에게서 파랑새가 그려진 엽서를 받은 건 그로부터 1년 뒤였다.
여행다이어트를 실행 중이에요.
세계 곳곳을 다녀보니 확실히 변한 게 있어요. 이젠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게 됐어요. 워낙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그런 마음이 사라졌어요.
다이어트가 잘 될 거라고 했던 말은 거짓으로 결론이 났어요.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더 잘 먹게 되더라고요. 몸이 더 무거워진 것 같아요.
결정적으로 좋은 사람도 못 만났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지금 이대로도 좋으니까. 너무 답답하게 살았어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갇혀서... 지금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려고요. 몸이 더 무거워진다 해도!
지금은 뉴칼레도니아에 있어요.
여행이 더 길어 질지도 모르겠어요.
호주에서 디자인 공부를 해 볼까 생각 중이에요.
이젠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을 거예요.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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